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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25 1차 제안을 전달하였다. 일본의 제1차 제안은 대한제국과 만주의 독립을 인정하 고, 대한제국에서의 러시아는 일본에 상공업상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 발 전을 방해하지 않으며, 대한제국에서 일본이 충분한 군사 지원권을 보유한다는 것 등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즉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10월 3일 동 경에서 러시아의 첫 대응 안이 일본정부에 전달되었다. 양측의 최초 입장은 분명 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서의 자유 재량권과 만주에서의 러시아의 권익을 동청철 도와 관련된 것으로 국한하기를 원했다. 반면 러시아는 일본에게 대한제국에서의 자유 재량권을 주되 다만 그 대가로 몇 가지 유보 조건48)을 전제로 하였다.49) 10월 30일에는 고무라는 제2차 일본 측 제안을 건넸다. 이것은 명백한 타협 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11일에는 러시아의 제 2차 제안이 전달되 었다. 1904년 1월 6일에는 러시아의 제3차 제안에서 만주 문제를 다시 포함 시켰고, ‘만주에서 일본이나 열강이 청국과 맺은 기존 조약에 따라 획득한 권 리와 특권을 향유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짝 물러선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일본은 러시아의 진의를 의심하였다. 1903년 12월 말부터 1904년 1월 초까지 일본은 교섭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확신한 것 같았고, 자 국의 외교를 전쟁을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도쿄에서는 1904년 1월 11일 겐로와 내각이 회동하였다. 고무라는 만주 문제의 본질적인 요소, 즉 청 국 및 만주의 영토보전에 대한 승인을 러시아가 고려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교섭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는 일본의 만주진출을 위해 청국의 영토보존이란 구실로 러시아의 만주이권을 부정하고 대신 일본이 차지하려는 음모였던 것이다. 일본은 1월 13일 제4차이자 마지 막 제안을 전하였다. 제4차 제안으로 일본은 교섭을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만음으로써 교섭 결렬을 준비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제4차 제안은 러시아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던 것이며 러시아 측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일본의 전술적인 전통인 선전포고 없는 기습을 시작하게 된다.50) 여기서 잊 어서는 안 될 것은 일본과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독립을 표면적으로는 내세운 주 48) 러시아는 수정안에서 일본에게는 못마땅할 세 개의 조항을 추가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일본은 만주와 그 연안지역이 모든 점에서 자국의 세력범위 밖에 있음을 인정한다’ 라는 조항을 추가하였다. 49) Andrew Malozemoff, 석화정 역,『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 서울 : 지식산업사, 2002, pp.332~337. 50) Ibid, pp.338~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