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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19 알아봄으로써 연구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시도하였다. 러시아 지역에서는 전쟁 이후 한인들의 민족운동이 지속되어 왔고 그 민족 운 동가들의 일부가 러일전쟁 시기에 러시아 측에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구한말부터 지속되어 온 항일 의병활동이 러시아가 승리해야 독립이 유지될 것으 로 믿고 러시아와 공조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측에서도 한인의용군 편성계획을 추진할 만큼 고종황제를 비롯한 대한제국민을 러시아의 우방세력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병운동은 한반도 북부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고 전국적으로 발생하였으나 본문에서는 러일전쟁 시기에 한반도 북부지역 에서 활동한 의병만 을 살펴보려고 한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종황제가 국비장학생으로 러시아 군사학교에 유학시킨 한 인 유학생이나 재러 교포들이 참전하여 대한제국의 독립을 목표로 러시아군에서 첩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러일전쟁에서 있었던 이들의 대러시아 협조활동 은 이후 연해주를 근거로 항일 활동에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선구적인 활동 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러시아에게 협력하여 어떻게 활동했는지, 또한 어떠한 모 습으로 역사 속에 남아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한반도와 국경을 접한 지정학적 인접성과 한․러 군사협혁 관계의 역사성 그리 고 러일전쟁과 같은 전시에 요청되었던 군사전략상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토대로 러시아와 대한제국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계속 패하고 있던 러시아는, 한반도 북부의 의병세력과 적극적인 연합전선을 꾀하는 것이 자 신들의 승리를 위해서 추진 가능한 유력한 방안이었다. 그리고 이 의병대 덕분에 포츠머스 평화회담 때까지 한반도 북부에 잔류해 있을 수 있었다. ‘한인의용군 편성계획’에 대해서는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 심헌용 박사의 일련 의 저술25)이 국내 학계의 큰 연구 실적이다. 「러일전쟁 시기 러․일 양국군의 한반도 내 군사활동」에서는 한인들의 저항 계기와 러시아 편에 가담한 항일부대 의 종류, 의용군 편성의 의의와 무장 방법, 그리고 성사되지 못한 이유를 소개하 고 있으며,「조러 연합군과 러일전쟁 전후 군사협력 -기원, 구상, 시도」에서도 또한 그 의의와 무장 방법에 이어 성공하지 못한 원인을 소개하고 일부 분석을 주 25)「러일전쟁시기 러․일 양국군의 한반도내 군사활동」,『아시아문화』21, 아시아문화 연구소, 2004. ;「조러연합군과 러일전쟁 전후 군사협력 -기원, 구상, 시도」, 『러일전 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5. ; 『한러 군사관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