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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러 ․ 일전쟁기 러시아군과 한인과의 관계 연구 216 군사연구 제126집 원할 것이라고 격려하며 훈장을 수여했다.15) 사실 지금까지 러시아 해군사상 최 대의 격전이었으며 수적 열세를 극복한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16) 그러나 육군의 연패와 쓰시마(對馬島) 해전에서의 결정적인 패전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시각은 러시아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는 최근 러일전쟁에 대한 의 미를 지역전이나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닌 세계전쟁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여 국제 적인 관계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열강의 대리전이었다며 자신들의 부정적인 의미 를 희석시키려는 노력이 강하다.17) 이런 관점은 기존의 유럽 사학에서 러일전쟁 주 15) 이영호, 「제물포해전의 복원과 영웅의 탄생」, 가스통 르루, 이주영 옮김,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 서울, 작가들, 2006, pp.203~204. 16) 이런 시각은 러일전쟁 직후 제정러시아 정부가 편찬한 각종 자료집과 회고록에서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는 러일전쟁기 군사령관을 역임한 쿠로파트킨의 저 서를 들 수 있다. 그의 회고록에서 러시아의 패전 요인으로, -함대가 보여준 의미 없는 역할, -운송을 위한 시베리아 철도와 동청철도의 수용능력의 부족, -우리 병력의 이동과 배분을 위한 외교적 협상력 부족, -증원군의 이동 지체, -부분 동원의 단점, -잘못을 저지른 병사 를 제때 처벌하지 않아서 야기된 규율의 파괴, -전장에서 특출한 자들에 대한 승진의 지체, -기술적인 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Alexei Nikolaievich Kuropatkin, The Russian Army and The Japanese War, Trans. Captain A. B. Lindsay New York, E.P. Dutton, 1909. p.229. 또한 “오페라의 유령” 등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도 제물 포 해전 뒤 귀국하는 러시아 수병들을 인터뷰해 그해 9월 “제물포의 영웅들(Les Heros de Chemulpo)라는 르포집을 펴냈다. 이후 신화가 된 ‘제물포의 영웅들’은 동상, 영화, 노래로 제작되었다.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4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 지』, 서울, 인물과 사상사, 2007. p.46. 17)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요미우리신문』추진진한 ‘러일전쟁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심포지엄은 2004년 2월 2일에는 ‘일본의 결단, 지금 다시 생 각해야 하는 러일전쟁’, 2005년 5월 23일~27일에는 ‘0차 대전으로서의 러일전쟁’이란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2005년의 ‘0차 대전으로서의 러일전쟁’ 심포지엄은 10개국 49명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이어서 27일에는 대중 500여명이 참 여한 가운데 공개강연과 토론을 열었다. 심포지엄에는 기조강연을 한 니쉬(Ian Hill Nish) 영국 런던 경제대 석좌교수, 같은 대학 리벤(Dominic Lieven)교수를 비롯하여, 미국에는 이리에(Akira Iriye) 하버드대 교수, 메닝(Bruce W. Menning) 미 육군 지휘 참모대 교수가, 러시아에서는 아이라페토프(Oleg Airaoetov) 모스크바대 교수가, 일본 에서는 요코테 신지(橫手愼二) 게이오대 교수, 가토 요코(加藤陽子) 동경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 한국 및 중국의 학자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심포지엄을 주도한 것은 주최국 일본과 영미 학자들이었다. 이 심포지엄의 결과는 책으로 정리되어 발간되었으며 각 종 저널에서도 ‘0차 세계대전’이라는 의미에 대한 서평을 실어 그 의미를 더해 주었 다. D. Wolff, W. Menning, J.W. Steinberg, S. Yokote, The Russo-Japanese War in Global Perspective : World War Zero, Leiden, Brill,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