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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러 ․ 일전쟁기 러시아군과 한인과의 관계 연구 214 군사연구 제126집 또한 근대 러일전쟁은 세계대전이 아니었지만 그 파장효과는 가히 전 세계적이 었다. 당시 직접적인 교전 당사국이 아닌 유럽 강대국 사이의 복잡한 정치적 책 략들이 러일전쟁의 격발에 기여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실각 이후 양면전쟁의 가능성에 불안했던 터라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을 동쪽으로 돌리기 위해 러 시아의 팽창적 제국주의 정책을 부추겼고,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동맹을 위해 러 시아편에 섰으며, 영국은 러시아의 극동정책으로 그 팽창을 일본이 막을 수 있도 록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수립했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문호개방 정책을 주장하 며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8) 비록 전쟁의 교전 국가는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에 국한되었지만 이 전쟁의 양상은 서방 열강 세력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러시아의 만주개방 거부와 한반도에서 러․일의 이해관계가 얽혀, 러시아의 “무분별하고 반동적이며 기회주 의적인 제국주의”9)와 일본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신흥 군국주의 정책”10)이 서 로 충돌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처음 100,000명의 병력으로 시작했으나 1905년엔 1,300,000명으로 증 원되었으며, 일본은 300,000명의 병력으로 시작했으나 1905년에는 3배로 증원되었 다.11) 이 전쟁에서 일본은 12만명의 인명손실과 91척의 함정 손실이 있었고 전쟁 주 8) 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서울 :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pp.24~25. 9) Wiiiam C. Fuller, Strategy and Power in Russia 1609-1914, New York, The Free Press, 1992, p.xx. 10) Masao Maruyama, Thought and Behavio in Modern Japanese Politic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p.137. 11) Ian Nish,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London, Longman, 1985, p.2. 이 수치는 전투에 참가한 군인뿐만 아니라 전쟁에 동원된 인력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1904년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와 일본 간의 국가 군사력을 비교하면 러시아가 전반적 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러시아의 병력은 1백만이 넘었으며 34만 5천명의 예비병 력이 있었다. 러시아는 동원체제에 들어가면 총 450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Christopher Martin, The Russo-japanese War, London, Abelard -Schman, 1967, p.30. 반면에 일본은 총 85만명의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정규 병력은 18만명 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 67만명은 예비군이었다. 해군력에 있어서도 러시아는 61만톤 으로 세계 제 4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의 해군력은 26만 톤이었다. R.V.C. Bodley, Admiral Dogo, London, Jarralds Publishers, 1935, pp.151, 160.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4개의 조선소가 있어 여러 개의 선박을 건조하고 손상된 선박 을 수리할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에 일본은 조선소의 부재로 외국에서 구매한 선박들만 보유하고 있었으며 만일 전투중에 주력함이나 일급 순양함들이 파손 되면 대치할 능력도 갖고 있지 못했다. David Walder, The short victorious war ; The Russo-Japanese conflict, 1904-5, London, Hutchinson, 1973,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