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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롬멜 7기갑사단 뮤즈강 도하작전 연구 210 군사연구 제126집 적으로 초기 전역에서 주공인 A집단군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고 벨기에 축선의 B집단군 보도만 집중적으로 실시하여 프랑스군을 기만하였다. 또한 1940년 5월 10일 전쟁발발 후 3일간은 의도적으로 공군을 주공과 관계없는 B집단군 지역에 집중 투입하였다. 한편 아르덴느 상공에서는 프랑스군의 정찰기가 출현했을 때만 독일군 전투기들이 나타나 이들을 격추할 뿐 공군이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 다. 독일군의 기만작전 때문에 서부전역 초기부터 연합군은 최면에 걸린 듯 북쪽 만을 응시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연합군은 예비인 7군을 작전계획에 따라 벨 기에 방면으로 진출시켰고 이것으로 연합군은 독일군의 대규모 기갑부대 포위망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프랑스군의 대적관 약화도 패배의 큰 원인이었다. 1939년 9월 폴란드가 패망할 때 독일-프랑스 전선 일부에서는 친목행사가 열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 고, 성탄절 전야에는 다리 위에서 쌍방이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대공 탐조등으로 불빛을 비추며 축제를 벌였다.27) 결국 프랑스군 대부분이 독일군을 ‘사악하지 않은 친구(Pas merchant)’로 인식할 정도로 대적관이 약화되었고 결국 롬멜 7기갑사단이 5월 17일 아벤, 18일 깡브레(Cambrai), 21일 아라스(Arras) 공 격시 10만 명에 가까운 프랑스군 집단 투항의 한 가지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Ⅴ. 맺 음 말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는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에서 배 우나 현명한 자는 타인의 경험에서 배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전투전례를 연 구하는 목적은 과거 전례의 교훈을 찾아 현대전에서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런 측면에서 롬멜 7기갑사단의 뮤즈 강 도하작전은 기계화부대 도하작전 전례로써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도하작전시 전차와 포병을 이용한 제병협동전투 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항공지원이 제한되는 상황 속에서 가용한 급조 도하장 비를 최대한 활용하여 도하를 실시한 것은 도하작전 전례로써 큰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7기갑사단의 뮤즈 강 도하작전 성공요인은 ‘롬멜’이라는 걸출한 인 주 27) 전격전의 전설, 511~5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