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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롬멜 7기갑사단 뮤즈강 도하작전 연구 206 군사연구 제126집 된 적이 없는 예하 지휘관에게 부여된 행동의 자유이다. 임무란 명령과는 달리, 달성할 목적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는 지휘관의 몫이다. ‘임무형 전술’의 기초는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23)의 개혁에 의해 마련되었고 그나이제나우(Gneisenau)24)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결정적으로 몰트케에 와서 ‘훈 령’으로 선포됨으로써 실무에 적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베 르사이유 조약의 엄격한 규제로 장교의 수가 4,000명으로 제한되었다. 이에 따라 정원의 열배에 달했던 장교들 중 최고 엘리트 장교들만 선발되었고 각자 자신이 수행할 직책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 즉 중대장은 대대장으로서, 대대장은 연대장 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모든 지휘관들이 어떠한 상황 에 봉착해서도 상급부대의 임무를 고려하여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 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임무형 지휘의 특징은 상급부대는 달성해야 할 목표만 하달하고 세부수행방법 은 예하 지휘관에게 위임하였으며 사단급 제대는 구두명령으로 지휘하는 것이 일 반화되어 있었다. 1940년 5월 15일 롬멜은 필리프빌(Philippeville)에서 세르퐁테느 (Cerfontaine)의 8마일을 공격시 해당 작전이 전과확대임을 고려하여 전진축선을 이용 신속히 공격하게 하였다. 1940년 5월 16일에서 17일 아벤 공격시는 4군 사 령관 클루게 상급대장의 정지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개시하여 프랑 스군 3,500명을 포로로 획득하기도 하였다. 호트 군단장이 7기갑사단의 계속된 공 격으로 측방이 노출될 것을 우려, 정지명령을 수차례에 걸쳐 사단 후방지휘소에 있던 작전참모에게 하달하였으나 롬멜은 고의적으로 약 5시간 동안 무전을 받지 않으면서 진격을 계속하였다. 롬멜의 선두부대는 측방 방호 없이 수십km를 진격 했고 후속하는 사단 본대와 연락이 두절된 가운데서도 적의 후방지역에서 홀로 움직이는 섬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벤 독단공격으로 프랑스군 2군단 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롬멜의 독단적인 공격이 얼마나 과감했는지는 히틀러는 롬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장군이 진격하는 동안 나는 밤마다 잠을 설 쳤소”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25) 주 23) 프로이센의 장군으로 나폴레옹 전쟁때 참모장으로 출전해 공을 세움. 프로이센 군대 대 개혁에 착수 국민군대의 창설을 주도했고 사후 의무병제가 시행됨. 24) 프로이센의 장군으로 해방전쟁이 일어나자 나폴레옹 1세에게 대항하였으며 워털루전 투에서 프랑스군을 추격하여 큰 승리를 거둠. 25) 진중근 역, 전격전의 전설, 4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