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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03 5월 15일 프랑스 1기갑사단에 비극이 찾아왔다. 연료를 가득 실은 수대의 차량 과 주유중인 전차에 슈투카가 내습했다. 프랑스군은 전차의 유류보급을 전적으로 유조차량에 의존했는데 유조차량은 야지에서의 운용이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기 동이 가능한 주유소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대씩 차례로 주유해야 하므로 양호한 지형에 있다고 하더라도 주유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림 9>와 같이 5월 15일 오전 슈투카 공격과 더불어 롬멜 7기갑사단이 프랑스군을 공격했다. 이 전 투의 결과 프랑스 1기갑사단은 170여대의 전차 중 36대만이 겨우 프랑스 국경방 면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5월 16일 아침에는 16대로 줄었고 공포에 휩싸인 프랑 스군은 속속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5월 15일 프랑스군의 뮤즈 강 북부 방어 선은 롬멜 7기갑사단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동시에 독일군 6기갑사단이 중 앙에서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은 남부에서 돌파를 실시하여 프랑스군 방어정면에 100km 돌파구를 형성하였다. 이로써 뮤즈 강 일대에서 프랑스군의 조직적인 저 항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독일군 기갑부대는 대서양을 향해 고속기동을 실시하였 고 이것이 5월 26일 연합군의 덩케르크 철수로 연결되게 된 것이다. Ⅳ. 전훈 분석 개전 초 독일군보다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었던 연합군은 독일의 전격전 앞에서 무기력하게 궤멸되었다. 독일이 이렇게 짧은 시간 내 對 프랑스 작전을 종결할 수 있었던 것은 기갑부대의 효과적 운용을 통한 작전술 차원의 돌 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거대한 댐도 작은 균열이 점점 커져서 무너지는 것이다. 롬멜 7기갑사단의 디 낭 도하는 프랑스군 방어선 라 페르테(La Ferte)에서 나무르(Namur)간 100km의 돌파구 형성의 계기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패배의 결정적 계기가 되 었다. 뮤즈 강 도하작전은 도하 작전시 전차를 이용한 제병협동전투 수행방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디낭’ 일대에서 도하작전을 실시한 롬멜과 세당에서 도하작전 을 실시한 구데리안의 도하작전을 【표 2】에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