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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01 알았다. 그때서야 군단장 마르탱 장군은 예비로 남겨둔 39연대장 듀제네(Dugent) 대령에게 북부 돌파구를 제거하기 위한 역습작전을 명령하고 역습의 지휘권을 위 임했다. 연대장 듀제네 대령은 제6전차대대 예하 3중대와 1기병사단 예하의 정찰 장갑차량 수대와 4개 포병대대의 화력지원도 약속받았다. 그러나 상급부대가 지 시한 공격개시 시간인 20:00는 39연대 보병부대가 준비가 지연되고 지원 및 배속 부대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21:00로 연기되었다. 이 또한 준비부족으로 소수의 르 노(Renault) 35형 전차와 정찰장갑차량들 만으로 공세를 개시했다. <그림 8>과 같이 39연대는 그랑제(Grange)를 통과해 북북 돌파구를 정면 돌파하고 뮤즈 강 서안까지 진출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야음으로 후속하는 보병부대들이 도착하지 않 아 퇴각하게 된다. 이로써 5월 13일 11군단의 역습도 실패로 끝나게 된다. 11군단 북쪽에 위치해 있던 2군단에는 5차량화 보병사단이 18보병사단과 나란 히 배치되어 있었다. 사단장 부셰(Boucher) 장군은 02:00경 독일군 보병부대가 ‘우’지역으로 침투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07:30에야 대응을 결심했고 18보 병사단과의 단절된 연락체계를 복구하기 위해 수색대대의 일부를 사단의 우단부 로 급파했다. 수색대의 보고를 받고나서 사단장 부셰 장군은 그제야 독일군 교두 보가 점차 그의 사단 책임지역 내로 확장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11:00경 제129보 병연대 예하 2대대에 즉각 역습을 실시하도록 명령을 하달했다. 이 역습은 14:00 에 개시되기로 계획되었으나 15:00로 연기되었고 그 나마 2대대는 공격 중 슈투 카의 공습을 받아 퇴각해 버렸다. 5월 13일 프랑스군 2, 11군단이 시행한 작전은 11군단의 1개 전차 중대가 일시 적으로 뮤즈강 서안까지 진격한 것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프랑스군 9군 사령관 코라프 장군은 한편의 ‘코메디’라고 빈정댔다.18) 군단급 역습이 실패하자 9군 사 령관 코라프 장군은 야전군 수준의 역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프랑스 9군 예비인 제 1기갑사단은 호트 기갑군단이 ‘우’와 ‘디낭’에서 뮤즈강을 도하한 5월 13일 뮤즈 강에서 40km 떨어진 ‘샤를루아(Charleroi)’에서 대기 중이었다. 프랑스 군 총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독일의 주공방향은 북부 벨기에이며 아르덴느를 통과 뮤즈 강변으로의 공세는 기만전술로 판단했다. 5월 13일 자정이 지날 무렵 독일 군 정찰대가 최초로 뮤즈 강을 도하한 후 24시간이 경과한 후 프랑스 1기갑사단 은 디낭방면으로 역습 준비명령을 수령하였다. 하지만 1기갑사단은 5월 14일 오 전을 집결지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허비했다. 전달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주 18) 진중근 역, 전격전의 전설,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