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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롬멜 7기갑사단 뮤즈강 도하작전 연구 198 군사연구 제126집 제했다. 부교가 완성되자 지휘용 장갑차에 올라 먼저 강을 건넜다. <그림 6>과 같이 5월 13일 저녁까지 2개의 교두보가 형성되었는데 큰 교두보는 5기갑사단 31 연대와 공조하여 6보병연대가 ‘우’지역에서, 작은 교두보는 디낭 부근의 것이었다. 롬멜은 양호한 기동여건을 감안해 작은 교두보가 마련된 7보병연대 지역을 주공 으로 결정했다. 또한 ‘르페’와 북쪽의 ‘부비뉴’ 사이에 조립교를 가설하라고 지시 했고 다음날 공병들은 08:00까지 30여대의 전차를 도하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3. 5월 14일 기갑군단장 호트 장군은 도하지역이 적 포병의 사정권 내에 들지 않도록 뮤즈강에 있는 2개의 교두보를 멀리 서쪽까지 확장할 것을 명령했다. 롬멜은 충분한 병력과 장비가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야간임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 대령이 지휘하는 7보병연대의 일부를 옹에(Onhaye)까지 진격시 켰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했다. 서부전역이 발발하기 직전에 바트고데스베르크(Badgodesberg)에서 실시된 예행연습에서 7기갑사단은 디낭 에서 5km 이격된 ‘옹에’까지만 공세를 실시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롬멜의 지나치게 신속한 공세로 인해 소위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5월 14일 08:00경 롬멜은 비보를 접수하였다. “비스마르크의 7보병연대가 ‘옹 에’에서 포위당했다.” 보고가 들어온 직후 무전이 두절되었고 모든 방법을 동 원해 비스마르크 대령과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롬멜은 도하 를 마친 모든 전차들을 ‘옹에’ 방면으로 즉각 진격시켰다. 호트의 기갑군단은 예비대가 없었기 때문에 옹에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4군 사령관 클루게 (Kluge) 상급대장이 예하 2군단의 일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갑자 기 비스마르크 대령과 무전이 가능해지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위기의 근 원은 무선 교신중의 부정확한 발음 때문으로 판명되었다. “비스마르크가 ‘옹 에’에 도착했다(eingetroffen)를 누군가가 포위되었다(eingeschlossen)”로 잘 못 접수한 것이었다.14) 5월 14일 08:00 7연대는 뮤즈강에서 6km 떨어진 ‘옹 에(Onhaye)’에, 10:00에는 12km 이격된 모르빌(Morville)을 점령하여 뮤즈강 서안에 교두보 구축을 완료하였다. 주 14) 황규만 역, 롬멜전사록, 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