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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197 반면 7기갑사단은 2개의 경 포병대대밖에 없었다. 이날 거의 모든 슈투카와 전 투기가 주공인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공군 지원도 최소 수 준이었다. 5월 13일 제7기갑사단에는 도하작전 초기 위기가 찾아왔고 롬멜은 <그 림 6>과 같이 도하지점 2개소를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롬멜의 최전방 진두지휘는 그만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롬멜은 전차중대를 진격시키고 지원화력을 조율하며 새로운 강습정 편성도 지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멜조차도 작전이 실패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롬멜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기초로 저술된 롬멜 전사록에 는 당시 도하작전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림 6> 도하작전 단면도 도하작전은 완전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장교들이 중상을 입고 고통받는 부대원들을 보고 동요했다. - 롬멜 전사록 10쪽- 사기가 저하된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롬멜은 1차 세계대전 돌격대장의 모습 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에 롬멜은 북쪽에서 도하작전 중인 부대를 지휘했다. 포 탄이 낙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공병들에게 최대한 빨리 부교를 띄우라 고 명령했다. 이를 위해 사단장인 그가 직접 허리까지 오는 강물에서 작업을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