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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손자병법의 詭道로 본 칠천량 해전 연구 180 군사연구 제126집 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원균에게 내렸다. 그런데 통제사 원균은 체찰사와 도원 수의 출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해상 출동을 거부하다가, 6월 18일에서야 부산으로 출항하면서 비로소 칠천량해전은 시작되었다. 결과론적으로 칠천량해전은 패전이 었지만 원균의 수륙병진 전술, 즉 적극적인 양공작전을 조정에서 원균의 손을 들 어 주었다면 칠천량해전의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2) 양동(陽動, Demonstration) 양동은 실제적인 전투가 실시되지 않는 지역에서 병력, 장비 또는 화력 등 의 무력시위를 통하여 적을 기만하는 것이다. 군사적 기만에서 언급하였듯이 작 전적 기만의 상륙지역 양동작전을 들 수 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는 1차 재침략목표인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남해안이 아닌 부산 동쪽 서 생포에 1월 12일 상륙함으로써 조선수군을 시간적․장소(지역)적인 면에서 기만 한다. 7월의 칠천량 해전 이전인 1월에 실시한 무력시위는 시간을 이용한 양동작 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것은 왜군의 주력을 바로 부산 앞바다와 거제도 방향 으로 투입시키지 않고 기만목표인 서생포에 일부부대를 상륙시켰던 지역과 시간 을 이용한 양동작전의 전례라 할 수 있다. 3) 계략(計略, Ruse) 계략은 허위첩보 및 활동을 고의적으로 적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왜적의 첩자 요시라(要時羅)의 재침략시기와 지역의 허위첩보 유출사건이 왜군의 계략에 해당한다. 1597년 1월 11일, 왜적의 첩자 요시라(要時羅)가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찾아가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 대한 허위정보(1월 4일 대마도에 도착하였 고 2~3개월 후에야 거제도로 침략해 올 것이다)를 유포하지만 조선 조정에 보고 된 일자는 1월 19일이었으며, 이보다 앞선 1월 13일에 이미 왜군의 함대는 거제 도가 아닌 부산 다대포에 정박해 있었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는 1월 12일에 벌써 상륙을 한 뒤여서 왜장의 계략에 조선이 완전히 기만당하였다.23) 4) 허식(虛飾, Show) 허식이란 적을 기만하기 위하여 적의 감시체계에 어떠한 물건 또는 활동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모의, 가장, 연출 등의 형태로 운용된다. 주 23) 이순신역사연구회, 전게서. pp.142∼143, ‘왜적의 허위정보 유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