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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손자병법의 詭道로 본 칠천량 해전 연구 176 군사연구 제126집 2) 군사적 기만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와의 전쟁 수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조선軍의 군 수뇌부부터 기만시키고자 하였다. 왜군의 군사적 기만전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략적 기만으로서, 왜군은 정치적 기만을 통하여 전략적 기만의 대상을 조선軍의 결심수립권자 즉, 선조와 조정신료로 선정하고서 이들의 군사적 오판을 유도하고자 했다. 당시는 분권화보다는 왕권중심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계획 및 명령은 선조에게 치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왜군은 선조를 포함한 도원수, 체찰사 등 조선 軍 수뇌부의 군사적 오판을 유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1596년 12월 부산포 왜병기지 방화사건 관련 이순신의 허위장계로 선조가 이순 신의 관직을 박탈하게 되는데, 전쟁을 대비하는 중요한 시기에 조선의 수장을 교 체한 것은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와 첩자 요시라(要時羅)의 조정에 대한 뇌물공 세로 조선 軍 수뇌부의 오판을 유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두려움의 대상은 이순 신이었기 때문에 조선수군의 중심인 이순신을 우선적으로 제거토록 선조 스스로 가 기만에 빠지게 한 것은 왜군의 전략적 기만이라 할 수 있다.19) 둘째, 재침시기와 지역의 허위첩보 유출관련 내용으로, 1597년 1월 11일 왜적의 첩자 요시라(要時羅)가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찾아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 대한 허위정보(1월 4일 대마도에 도착하였고 2~3개월 후에야 거제도로 침략해 올 것이다)를 유포하지만 조선 조정에 보고된 일자는 1월 19일이었으며, 이보다 앞선 1월 13일에 이미 왜군의 함대는 거제도가 아닌 부산 다대포에 정박해 있었 다. 상대가 알더라도 어떻게 대응 할 수 없도록 재침시기와 침략지역에 대한 기 만을 하였다. 셋째, 작전적 기만의 상륙지역 양동작전이다. 1596년 11월 6일, 왜군이 재침할 것이라는 첩보가 확인되었고, 왜군의 1차 침입목표는 전라도라는 것과 수륙병진 으로 침략할 것이라는 것까지 밝혀졌다. 이에 조선 조정은 재침에 대한 방어대책 으로 각 지역의 거점 산성을 중심으로 한 ‘청야전술(淸野戰術)’과 수군을 이용한 ‘해로차단 전술’ 두 가지를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1597년 1월 12일 바로 이 시기 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150여 척을 이끌고 서생포에 상륙하게 되는데, 전 라도 또는 남해안이 아닌 부산 동쪽 서생포에 상륙한 사실은 ‘사막의 폭풍’ 작전 주 19) 이순신역사연구회, 전게서, p.143. <선조실록> 제7차 어전회의(1597. 1. 27)에서 조정신 료들은 이순신을 제거해야함을 결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