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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175 서인의 선두주자였고, 원균은 윤두수의 친척으로서 동인의 선두주자에 속해 있어 이순신과 원균은 가까워 질 수 없는 사이였다. 동인세력은 선조를 등에 업고 서 인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조그만 꼬투리도 찾고 있을 즈음, 왜군 또한 조선수군을 와해시킬 방도를 찾고 있었다. 왜군은 1597년에 전쟁을 재개하면서 남해안의 제해권 확보가 전쟁의 승패를 가 름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 수군의 지휘체제를 와해 시키기 위한 책략으로써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에 왜장 고니시(小西行長)는 첩자인 요시라(要時羅)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보내어 “1월 21일에 가토가 조선에 도착할 터인즉, 해상에 매복해서 급습하면 생 포할 수 있다”는 허위정보16)를 제공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러한 제보를 믿고 이순신에게 출동을 명령하였으나 이순신은 “적의 정보를 믿을 수가 없다”고 판단 하여 출동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파직하여 한성으로 압송하였고 이순신의 후임으로 전 경상우수사 원균을 임명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또한 원균이 통제사로 임명된 직후 경상우수사 배홍립(裵興立) 역시 배설(裵楔) 로 교체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나주목사로 임명되었던 권준도 부임하지 못하고 교 체되었는데, 이들은 이순신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인사 조치는 통제사 원균의 임명과 함께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나, 이것은 이순신 의 모든 연결고리는 전부 차단하고 끊어버리려는 조정과 동인 반대세력의 합작품 인 동시에 왜군의 정치적 계략이라 볼 수 있다. 왜군의 정치적 기만내용을 요약하면, 왜장 고니시(小西行長)는 첩자 요시라(要 時羅)-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장계-조정(선조) 및 도원수 권율로 이어지는 정치적 계보를 통해서 허위정보 및 활동을 고의적으로 조선조정에 제공하여 국가적 차원 의 계략을 실행에 옮겼다. 선조는 정말 필요한 정보획득보다는 당쟁에 의한 오정 보․불요정보(Distractions)17)를 접하게 됨으로써 정보공백(Gaps)18)이 발생하여 스스로에게 기만을 당하는 동시에,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국가적으로 왜군의 기습 과 기만을 허용했다. 주 16) 이순신역사연구회, 상게서. pp.135∼137 요시라의 반간계, 선조실록(1597. 1. 10) 인용. 17) 지휘관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제공되는 정보. 임무수행과 관련 이 없거나 관련이 있더라도 적시성이 결여된 정보. 불요정보는 업무의 과부하와 혼란 을 초래할 수 있음. 18) 지휘관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획득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정보의 수요와 공급상의 격차, 정보공백이 발생하면 적에 의해 기습당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