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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손자병법의 詭道로 본 칠천량 해전 연구 168 군사연구 제126집 고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아보자. 먼저, 왜군의 재정비 및 재침략준비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만계획수립의 전 제조건이자 전투력집중과 기습달성을 위한 실이비지(實而備之)․강이피지(强 而避之)․공기무비(攻其無備)․출기불의(出其不意)개념의 기만목적에 의거 임 진왜란 이후 전란의 패배를 면밀히 분석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정유재란(1597년)이전 조선수군에 대한 많은 연구와 기만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이순신의 수군이 실(實)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서 서두르지 않고 강화교섭기 기간 동안 차분히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왜군은 조선수군이 주로 사용하였던 전술을 모방하였다. 칠천량 해전에서 야간 기습전과 근접전을 적용하였는데, 판옥선5)에 砲를 장착하여 화력으로 원거 리에서부터 상대의 전투의지 무력화와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조선수군에 대항하여 승리하기 위해서 상대의 감제관측 및 조기경보가 제한되는 야간(시간)을 이용하 였다. 소규모 선견대로 야간 은밀접근 후 상대의 경계가 이완된 시간․곳(장소)을 이용하여 전선(戰船)으로 상대를 포위하고서 군선의 돗대를 사다리로 사용, 전선 에 올라 탄 후 칼을 이용하여 격파하는 근접전으로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을 대파 하였다. 둘째, 전쟁지속능력을 원거리 투사할 수 있는 대형 군선을 건조하였다. 임진년 의 패전 원인 중에서 본토가 아닌 지리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조선의 남해바다라 는 지리적 악조건과 장거리 해로수송능력, 조선수군의 판옥선에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춘 전선이 필요했다. 따라서 왜군은 강화교섭기간동안 아다케(安 宅船)6)와 같은 전쟁지속능력을 원거리 투사할 수 있는 대형 군선을 건조하는 재 침준비를 하였다. 7월 22일 칠천량 패전소식이 원균과 동행했던 선전관 김식의 주 5) 조선 명종 때에 노략질하는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개조한 조선의 주력 戰船. 전장 이 100척 승무원이 130여명이나 되는 큰 배여서 화포를 탑재하여 높은 위치로부터 적 선을 내려다보며 싸울 수 있고 구조도 매우 견고하여 충돌로도 능히 왜선을 격파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평저선으로서 적송각목 여러 개를 잇대어 만든 튼튼한 저판 위에 4치 두께 적송판자를 올려붙여 만들었기 때문에 관리만 잘 하면 장기간 쓸 수 있 었고 왜․명나라의 첨저선에 비하여 견고하였으나 약간 둔한 것이 흠이었다. 6) 대선으로 불린 일본 수군의 주력 戰船. 일본 수군에게는 해상전투라는 의미에서의 해전 개념은 없었다. 군사와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왜군은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판옥선 전투력에 10전 10패를 했다. 그러나 강화교섭기 동안 조선수군 전략을 간파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으로 다량 건조되며,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 에 가까운 패배로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