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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141 제무대에서 중국에 대한 인도의 지원 역시 현저히 증대됐다. 1951년 이후에도 한 동안 중국과 티베트 관계는 그런대로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티 베트인들은 점차 중국의 통치방식에 불만을 갖게 됐다. 1955년부터 시작된 동 티 베트 골락(Golak)과 암도(Amdo)지역 등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이주정책은 지역 경제에 영향을 주어 토착민의 불만을 야기시켰고, 1955년 말과 1956년 초에 무장 폭동이 일어났다. 1958년에는 중국이 네루의 티베트 방문을 저지하면서 인도의 국경 마을인 칼림퐁(Kalimpong)이 미국과 중국 국민당 첩자들에 의해 티베트인 폭동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난 서한을 인도측에 보냄에 따라 중․인 관계는 불신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45) 이렇게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1959년 3월 라사에서의 대규모 반중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으로 수천 명의 티베트 인들이 라사를 탈출, 3월 31일 인도령 타 왕 지역에 들어섰다. 인도정부는 이들에게 정치적 망명처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인도 간에는 치열한 상호 비난전이 전개되었고 티베트 폭동과 그에 대처 하는 인도의 행동에서 중국은 인도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 었다.46) 당시 인도는 지역적 주도권과 비동맹 중립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면에서 경 쟁관계에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으며, 영국의 인도 통치시대 이래 중요한 대 외정책의 하나가 되어온 완충지대의 확보를 통한 안보보장을 위해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서 중국의 동정을 민감하게 살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중국과 인 도 모두 제3세계에 속하는 국가로 자처하고 있었으나, 중국은 과거 서구세력에 침탈당했던 자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독자 외교 정책과 미․소에 대항하여 아 시아․아프리카 세력을 규합한 독자세력을 형성하겠다는 세계전략 차원에서 제3 세계의 일원임을 주장하고 있었다.47) 반면 인도는 자국의 지도층에 면면히 내려 주 45) Barnds, 앞의 책, p.144 : 달라이 라마가 1956년 인도를 방문 시 그는 티베트로의 귀환 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중․인 간에는 긴장이 조성되었는데 저우언라이로 부터 티베트 자치를 인정한다는 언질을 받은 네루가 이 소식을 달라이 라마에게 전하 여 사건은 간신히 수습되었다. 그러나 이 일로 중국이 티베트 문제에 대한 인도의 개 입여부에 대항 의구심은 증폭되었다. 46) 앞의 책, p.145. 47) 이는 마오쩌둥의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그는 세계를 세 개의 세계로 구분하였는데 제1 세계를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소련으로 보고, 제2세계를 발전된 식 민제국주의 국가로서 독일, 일본 등으로 규정하였으며, 제3세계를 아직 발전하지 못한 신생 독립국가, 중국, 인도와 같은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