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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수도 서울지역 전례 연구 114 군사연구 제126집 은 일성을 대번에 삼켜 버리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7개의 종대로 병력을 구분하게 된다. 당시에 변이중(邊以中)은「화차(火車)」라고 명명한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한 화차에 총안(銃眼) 40개를 만들고 그 안에 총기를 장치하여 일제히 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권율은 또「수차석포(水車石砲)」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 것은 척석기(擲石機)의 일종으로 수차(水車)같이 돌아가면서 탄력을 이용하여 돌 을 연이어 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또 그는 적이 큰 병력으로써 일거에 밀고 나올 것을 짐작하고 성책을 내외 이중으로 만들어 놓고 흙 제방을 쌓아 아군의 피해를 되도록 줄이도록 하였다. 또 군사 각자에게는 젖은 수건 한 자(尺) 씩을 갖게 하고, 회(灰)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차게 하는 한편, 가마솥 을 진 후방에 걸어 놓고 방화용수를 마련하는 등 21일까지 분주하게 보내는 동시 에 한성 안에 정탐군을 보내 적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22일 적의 제1대장인 고니시(小西行長)의 군사들이 성책 수보 가까이 오자 아 군이 화차와 포로 궤멸시키고, 이어서 제2대장 이시다(石田三成)를 비롯한 장수들 이 진두에 서서 다시 돌진하여 왔으나 역시 궤멸되었다. 이어 제3대로 일선으로 몰려나온 구로다(黑田長政)는 지난해 9월 아군과의 격전을 경험하였기에 사다리 등으로 신중하게 공략하려 하였으나 화포로 사다리 등을 파괴하여 구로다군은 궤 멸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모양을 바라보던 총대장은 노하여 침략 이래 처음으 로 제4대의 최선두에 서서 나오자 적의 모든 군사들이 뛰어들어 제1성책을 넘어 섰으며, 일부는 제2성책 가까이까지 근접하게 되었다. 이 때 권율은 직접 북을 울 리며 독전하는 한편 화차의 총통을 적장에게 집중시키자 적의 총대장 우키다는 결국 부상을 입고 퇴진하고 만다. 그 후 소모전을 통해 아군의 화살을 다하게 하지만 경기수사(京畿水使) 이빈 (李蘋)이 수만 개의 화살을 실은 배 2척을 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보급하자 적은 결국 물러나고 만다. ∵ 분 석 한강 전투에서 볼 수 있듯이 임진왜란 초기만 해도 조선의 전투력 수준은 창․검․활 위주의 보잘것없는 무기체계로 조총을 휴대한 왜군에 상대가 되지 않 았다. 즉 병력, 화력, 무기체계, 지휘관의 자질, 전투의지 면에서 왜군에 비해 매우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