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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113 <그림 9> 행주대첩 적을 견제케 하는 동시에 변이중(邊以中)은 정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양천현(陽 川縣)에 위치하면서 행주산성과 광교산(光敎山)과의 중간에서 적을 견제 억류토 록 한다. 이와 동시에 강화(江華), 통진(通津), 파주(坡州), 양주(楊州)방면과 연락 하여 진퇴에 협조케 하고 또 보급선을 확보토록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 승장(僧將) 처영(處英) 등과 같이 정병 2천3백 명으로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한성 안에 있는 적 주력군을 견제하자 한강 기슭에는 때 아닌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권율이 한성부 서쪽 20리에 진을 치고 적 주력군과 일전을 치른다는 소식을 접 한 성안의 적은 크게 당황하여 중론을 내리는데, 그것은 성 중 3만 군사를 모조 리 풀어 조선침략 이래 한 번도 직접 진두에 나서 본 일이 없던 총대장 우키다 (宇喜多秀家)와 삼봉행(三奉行)들의 본진장령들까지 출동하여 행주의 손바닥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