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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수도 서울지역 전례 연구 106 군사연구 제126집 나. 신라의 반격(5C경) 한강유역 전투 : 551~553년 / 한강 일대 • 나제 연합군(신라 진흥왕, 백제 성왕) ↔ 고구려(양원왕) ⇒ 작전 결과 : 나․제 연합군 승리 백제 한강 하류지역, 신라 상류지역 10개 군 분할 점령 백제의 성왕은 신라의 군사적 중립을 끌어내는 수준을 넘어 연합군을 결성하는 단계로까지 양국관계를 발전시켰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전력이 북방으로 집 중되어 남쪽의 한강일대를 적극적으로 방위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 551년에 백제 -신라 연합군을 결성하고 한강일대의 고구려군에 공격을 단행하였다. 이 무렵 고구려는 북쪽 변경인 신성(新城)과 백암성 일대로 쳐들어온 돌궐족과 의 교전으로 인해 한강유역은 백제-신라 연합군에게 점령을 허용하고 말았다.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회복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하고 신라는 상류지역 10군을 분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한강 상류를 차지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직접 교통로를 갖지 못 하였다. 당시 신라로서는 한반도 최대 강국인 고구려를 적대세력으로 만드는 부 담도 결코 적지 않았으나, 고구려에 의존하던 대중국외교 통로를 상실한 것이 가 장 큰 위기였다. 그래서 동맹국인 백제마저도 적으로 돌리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 지지 않을 수 없었다. 553년 7월 신라는 내물왕(奈勿王)의 5대손 거칠부(居柒夫)와 그 휘하 8명의 장 군들이 지휘하는 군사들을 주축으로 기습 공격하여 백제가 점령한 한강 하류마저 점령하였다.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일대의 패권을 차지함으로써 당나라와 직 접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 분 석 삼국의 한강 일대 쟁탈전은 어느 국가가 삼국통일을 위한 유리한 입지를 확 보하느냐 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된다 할 수 있다. 첫째,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곡창지대를 확보할 수 있는 유 리한 지역이었고, 신라와 백제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지형적 이점을 확보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