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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하물며 선대가 일으킨 국가의 마지막을 바라보 는 왕의 심정이야 차마 필설로 형용하겠는가. 구형왕의 이름은 구형(仇衡)이다. 신라 법흥왕 원 종(原宗) 7년, 경자년에 가락국 겸지왕이 29년간 재 위 후 죽고 태자 구형이 즉위하였는데, 이 때, 신라 가 자주 침략해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구형왕 은, ‘백성을 기르는 토지를 가지고 백성을 해롭게 하 고 싶지 않고, 또 종묘와 사직이 나로부터 망하는 것 을 차마 볼 수가 없다.’ 하며 이른바 양민지도(養民之 道)를 내세워 신라에 양국(讓國)한다. 이에 법흥왕이 예를 차려 상등(上等)으로 대우하고 그 나라를 식읍 (食邑)으로 삼고 '금관'이라 하였다. 그러나 구형왕은 이를 거절하고 지품천현(지금의 산청)의 옛 태왕궁(수정궁)에 은거하니 가락국 10대 2. 덕양전 전경 97 경남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