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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우리민족의 선각자 서재필이 독립운동을 펼친 곳, 필라델피아 99 미국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 필라델피아의 독립관 (Independence Hall)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미 주의 한인들이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인들이 ‘제1차 한인대회’를 개최하여 한국 독립운동의 본격적인 출 발을 알렸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 서재필의 활동지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3일 천하로 끝나 면서, 정변의 주도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일본으로 망명했다. 서재필은 그 가운데 나이가 제일 어렸다. 일본에서는 갑신정변 주도자들을 냉대했다. 그래서 서재필은 박영효‧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 다. 박영효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서광범은 주 미공사관에 재직할 때 만났던 미국인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갔다. 미국에 도착한 서재필은 1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가구점의 광고 전단을 배포하는 일을 얻었는데, 그 러면서 그곳의 YMCA에서 영어를 배웠다(「My Days in Korea」, 『The New Korea』 1938년 8월 25일자 ). 1887년에서 1889년까지 서재필은 펜실베니아주 윌 크스-바르(Wilkes-Barre)에 있는 해리 힐먼(Harry Hilman) 학교에서 공부했고, 1890년에서 1891년까 지 라파이에트(Lafayette) 대학에서 공부했다. 대학 을 졸업한 이후 워싱턴으로 가서 군의학학교의 도서 관에서 동양의학 서적 번역가로서 일을 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야간에 조지 워싱턴 대학에 다녔고, 의학부에 진학하여 조지 워싱턴 대학 의학 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가필드(Garfield) 병원의 병리학자로 지명 받았으며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강 의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던 서재필은 1895년 고종(高宗) 의 부름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1896년 4월 『독 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설립하여 근대화 운 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운동이 수구파의 방해로 실패하자 189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병리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관 (Independence Hall) 전경 갑신정변의 주역들(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 제1호 (1896.4.7,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