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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북가주의 한국독립운동 중심지, 새크라멘토 99 그 자신이 직접 쓴 3 · 1운동에 대한 신문기사를 『아 시아의 독일(The Germany of Asia)』이라는 책자로 발간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널리 알렸다. 맥클래치가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책자의 제목을 정한 이유는, 일본이 독일과 같이 침략적 야심을 가지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그 정책이 독일과 같이 잔인하고 무도하 기 때문이었다. 맥클래치가 영향력 있는 언론사 사주로서 한국 독 립운동을 미국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자,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그의 활약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특 히 3 · 1운동이 일어난 이후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이승만도 1919년 6월 11일 맥클래치에게 편 지를 보내, 독립선언서를 처음 가져온 것을 추켜세 워 주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는 한인회 의(Korean Congress)에 참석해 연설을 해달라고 부 탁하였다. 또 이승만은 1919년 12월 11일자 편지에 서, 맥클래치에게 『아시아의 독일』 책자를 더 보내달 라고 요청하였다. 맥클래치는 1938년 5월 16일 81세로 별세하였다. 『국민보』 1938년 5월 18일자에 「 좋은 친구가 별세」 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부고가 실렸다. 기미년 운동에 한국독립운동 때에 한국을 일부러  심방하고, 한국 독립선언서를 손수 가지고 와서 영 문번역으로 세계에 먼저 반포한 미국신문계의 원동 통신 대가 『새크라멘토 비』 신문의 주인 맥클래취씨 는 5월 16일에 별세하였다더라. 『국민보』는 맥클래치가 「 3 · 1독립선언서」 영역본 을 가지고 와 전 세계에 알렸던 인물로 ‘좋은 친구’라 고 하였다. 맥클래치가 미주 한인사회에서 ‘좋은 친 구’가 된 것은 「 3 · 1독립선언서」를 가져와 미국사회 에 알리고, 또 미주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지지하며 독립운동 세력과 꾸준히 교류를 하였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에서 개최된 3 · 1독립선언 제2년 경축식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1920년 3월 1일 3 · 1독 립선언 제2년 축하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북미지방총회에 기념행사 준비 에 대해 철저를 기하게 했으며, 구체적인 기념식 진 행 상황을 지시하였다. 독립선언 제2년 경축식은 북 미의 모든 동포들이 참여할 수 있게 캘리포니아의 맥클래치가 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편지(1934년 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