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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전개하다 99 다. 멕시코시티 한인사회가 다시 대한인국민회로 통 합되었고, 멕시코시티의 한인들도 국민회를 중심으 로 단결되었다. 태평양전쟁기 멕시코시티 한인들의 독립운동 1941년 12월 7일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 · 일전쟁’이 발발하였다. 멕시코 상원 과 하원에서는 1942년 5월 29일과 30일에 독일 · 이 탈리아 · 일본에 전쟁선포안을 통과시켰고, 6월 2일 멕시코 대통령이 비준하였다. 그리고 멕시코에 거주 하는 외국인들에게 외적민(外籍民) 등록을 하게 하 였다. 일제가 전쟁을 도발한 직후 묵경지방회 선전위 원 한종원(Jose Hahn)은 1941년 12월 20일에 멕시 코시티에서 발간되는 세 종류의 일간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과 멕시코 한인의 입장과 독 립 운동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그리고 한종원은 1942년 1월 초순 『노베다드(Novedad)』 신문에 「 재 묵한인은 진 묵국의 은혜를 갚자 」 라는 글을 게재하 여 멕시코 국민들의 동정을 많이 얻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멕시코 한인들은 북미의 재 미한족연합회와 대한인국민회에 도움을 요청하였 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한국 국기와 멕시코 국기가 새겨진, 스페인어로 된 신분증명서와 배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한인들은 이 배지를 가슴에 달고 김익주의 생애를 증언하는 손자 아벨 김(오른쪽) 멕시코시티 둘레로스 공동묘지의 김익주 묘소(김도형 촬영)  김익주 선생의 건국훈장 애족장 증서(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