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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② 99 의 기개는 더욱 오늘과 같은 시대에 절실하다 할 것이 다. 다만 우리 동방의 풍조는 옛것을 믿는 태도가 너 무 지나쳐, 무릇 선배가 논한 바가 있으면 하나라도 자 신의 의사를 더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합치하지 못 한 점이 있으면 문득 이단사설(異端邪說)로 지목한다. 심할 경우에는 ‘성인을 비난하고 법도를 업신여긴다.’ 고 배척해 왔다. 이러한 폐단을 고치지 못하면 자유 의 사상을 꽃피울 수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를 끝내 구 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모르겠거니와, 우리들 중 어 떤 사람이 능히 의연하게 자임하여 300년간의 학설 을 2천만의 세속된 무리와 도전하여 결투할 것인가? 오후에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옮겨오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양기탁씨가 자신의 일처럼 여겨 일일 이 가르쳐 주었다. 15일 오후에 고향의 가족들에게 출발하여 올라 오라는 전보를 쳤다. 16일 귀향하는 종기씨를 전송하였다. 종기씨는 여비를 다 써버렸으므로 6원을 내어 노자에 보태라 고 하였다. 17일 제중원 주인 최용호가 『성산명경聖山明 鏡』이라는 책을 한 권 주었다. 그 책의 대강의 뜻은, 유 · 불 · 선 삼교의 내용으로 질문과 응답을 가설하여 구성한 후 결국은 예수교로 귀결한 것이다. 18일 집으로 보낸 전보가 도착하였다고 한다. 20 일에 출발하려 하는데, 사방에 감시가 깔려있어 빠 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사하 는 일이라 걱정이 놓이지 않는다. 19일 9시 10분에 경의선 열차를 승차할 때 여러 사람이 정거장에 나와 전송하였다. 10시에 개성을 지 나 사리원에 이르러 용천 사는 신덕인(申德人)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나이는 60남짓 한데 순박하고 진실하 여 고풍이 있는 사람이다. 간도의 사정에 제법 소상하 여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니 나그네 길의 괴로 움을 모두 잊을 만하였다. 오후에 평양에 당도하였다. 선천에 이르러 신노인을 작별한 후에는 차 안에 는 한 사람의 한인도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소 리만 떠들썩하니 사뭇 무료함을 깨닫겠다. 신의주에 이르러 하차하여 대동회사(大同會社)를 찾아가니, 주 인 신효석(申孝錫)은 곧 신덕인의 재종질이었다. 사 람됨이 그 아저씨와 아주 비슷하다. 한번 보자마자 마치 오래 사귄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 21일 용강학교의 학도 이용혁(李龍赫)을 여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붙임성이 매우 절친하였다. 함께 거 리에 나가 유람을 하며 시장의 정황을 두루 둘러보았 다. 대개 우리 한인의 가게는 초라하고 장사는 쓸쓸하 니, 의관은 자못 정갈하고 훌륭하다. 청인의 경우에는 상업은 자못 흥성하나 말소리나 용모는 거칠고 비루 하며, 고용하여 부리는 사람이 많다. 일인은 거처가 화 려하고 상업이 왕성하며 용모는 강하고 사나웠다. 이 런 점에서도 세 나라 사람의 우열을 알 수가 있겠다. 22일 신효석에게 부탁하여 우리나라 돈을 청국 돈으로 환전하였다. 후일에 도강한 다음에 쓸 일이 있 을 것에 대비해서이다. 일본 사람의 서점에서 만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