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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89회) • 경기도 시흥군의 만세시위 99 3월 27~29일, 4월 10일 서면 만세시위와 주재소 습격 3월 27일 밤에 서면 소하리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때 이정석(李貞石)이 체포되어 광명시 노 온사동 361-2, 지금의 온신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노온사(老溫寺)경찰관주재소에 구금되었다. 이에 이튿날인 3월 28일 이정석의 부친 이종원(李 宗遠, 이명 李元仲, 李鍾雲)과 배재고보생 최호천(崔 浩天), 윤의병(尹宜炳) 등이 나서 이정석을 탈환하기 위해 소하리 주민 약 200명을 규합하여 밤 11시경 노온사경관주재소를 포위하고 외쳤다. “이정석을 석방하라!” “주재소를 불태워 버리자.” “순사를 때려죽이자!” 시위대는 주재소 게시판을 파손하고 뒷벽을 부수 었다. 심야의 습격에 일경들이 놀랐다. “이미 영등포경찰서로 송치되었다. 이정석을 석방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시위대는 “만약 내일까지 석방하지 않으면 내일 밤 다시 와서 공격하겠다.”고 하며 다짐을 받고 주재소 구내와 보통학교 뒤편에서 만세를 부르고 해산했다. 영등포에서 보병과 순사를 급파하였다. 석방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던 것같다. 3월 29일 수 백 명의 군중이 다시 모여 주재소를 불태웠다. 4월 10일 밤 11시에는 시흥군 서면 면장 집에 불 을 질러 반쯤 탔다. 면장은 면민들에게 “망동하지 말 라고 경고”했던 인물이어서 면민들의 분노를 샀다. 3월 27~29일 서면, 서이면, 신동면 등지 만세시위 3월 27일 오후에 서이면 일동리의 백기화(白基和) 집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짚신을 만들고 있었다. 서이 면 비산리의 이영래(李永來)가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다른 마을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부르고 독 립운동을 시작했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짚신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느냐?”고 질책했다. 그날 밤 8 시 마을 주민 5명이 일동리 서쪽 언덕에 올라가 조선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9일 서이면 안양리에서 약 3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27일 서면 박달리에서 조수복(趙壽福)은 밤에 마을 주민 약 30명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 다. 박달리에서는 3월 29일에도 약 80명이 만세시위 를 벌였다. 3월 28일 신동면 양재리에서 약 300명이 만세시 위를 벌였다. 3월 29, 31일 경기 시흥군 군자면, 북면, 과천면 만세시위 3월 29일 시흥군 군자면 장곡리와 월곡리에서 각 각 약 100명, 거모리 부근 거모경찰관주재소 관할 구 역 7군데에서 각각 약 100명이 화톳불을 피우고 만 세시위를 벌였다. 북면 구로리에서도 약 100명, 신길 리에서 100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제는 주모자 2명을 체포하고, 발포로 위협하여 해산시켰다. 3월 31일 군자면 선부리에서 다수 군중이 군자면 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했다. 거모경찰관주재소에 서 경비를 서던 군대 6명이 이들을 저지하려 했고, 영등포 경찰서에서 경부 이하 2명이 급파되었다. 3월 29일 과천면 주암리에서 약 100명이, 거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