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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4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는, 1907년 7월 26일자 『신한민보』에 실린 ‘한인의 큰 복덕방’이라는 광고가 도움이 된다. 오늘날 미국안에 제일 일 많은 곳이 어데뇨. - 덴버 제일 품값 많은 곳이 어데뇨. - 덴버 또 우리 한인 지접(止接)하기 좋은 곳이 어데뇨. - 덴버 왜 그러하뇨. 첫째 철로 일이 1달러 50센터부터 2 달러 50센트까지, 사탕무우 일이 매일 3달러에서 6달러 50센트까지, 기계창 일과 흙파는 일과 돌깨 는 일은 의례히 일당 3달러 25세트이다. 둘째 숯 굽는 일과 흙파는 일과 일과 돌깨는 일은 의례히 일당 3달러 25세트이다. 그중 숯굽는 일은 도급 (都給)하면 3~4달러 이상, 또 집안 일은 매주 9달 러 10센트, 쿡(cook)하는 일은 18달러이다. 셋째 는 이곳에 의복과 식물(食物)의 값이 헐후하여 노 동하는 이나 학생에게 지극히 경제되는 것이라. 그런 고로 나는 우리 동포를 급히 불러 가로데, 덴 버는 한인의 ‘큰 복덕방이라’ 하노라. 위와 같이 덴버에는 한인들이 노동할 수 있는 수 많은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인들이 덴 버로 몰려들었다. 이외에도 덴버는 교육면에서도 중·고등학교 등록금이 면제되었고, 주립대학 역시 다른 주보다 극히 적은 등록금만 받는 관계로 한인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이렇 게 많은 한인들이 모이다 보니, 협잡꾼도 섞여 있었 다. 『공립신보』 1906년 10월 7일자 기사에 의하면, 덴버에서 개최된 애국동지대표회 기사(The Weekly Sun 1908년 7월 14일자) 애국동지대표회 대표 박용만이 장인환 · 전명운 의거 의 연금 편지(1908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