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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4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크라멘토에 있는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라는 신문사이다. 캘리포니아 각지에서 발행 되는 신문에 ‘비(Bee)’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모두 『새크라멘토 비』 신문사에서 경영하는 것이다. 이 신 문사의 발행인 맥클래치(V. S. McClatchy)는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새크라멘토 비』의 발행인 맥클래치가 한민족이 일제의 압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 3 · 1독립선언서」 영문본을 미국으로 가져왔다. 맥클래치가 가져온 「 3 · 1독립선언서」 영문본은 북미에서 최초로 1919년 4월 3일자 『새크라멘토 비』에 실렸다. 그리고 「 3 · 1 독립선언서」는 AP통신사에게 제공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맥클래치가 「 3 · 1독립선언서」를 가져오게 된 이유 는, 3 · 1운동이 일어난 당시인 1919년 3월 3일부터 이틀 반 동안 서울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에 체류하는 기간에 한국인들의 3 · 1운동을 직접 목 격했을 뿐만 아니라, 군중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현 장을 인력거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였다. 맥클래치는 1919년 3월 6일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입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돈을 넣는 혁대 (Money Belt)’ 속에 감추어 가지고 왔다. 이처럼 3 · 1 운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한 「 3 · 1독립선언 서」를 국외로 가져가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에는, 맥 클래치라는 미국 언론인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또한 맥클래치는 자신이 서울에서 목격한 한국 독 립운동의 상황을 정확하게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 는 『새크라멘토 비』에 게재하였고, 3 · 1운동을 “세 계사에서 이상을 위해 조직화된 수동적 저항의 가 장 위대한 사례(The Greatest Example in World History of Organised Passive Resistance for an Ideal)”라고 극찬하였다. 그는 자신이 본 그대로의 3 · 1운동 현장 의 실상을 미주 언론에 전파했으며, 맥클래치 사진과 3 · 1운동 소식을 게재한 『샌프란시스코 이그재 미너(SanFrancisco Examiner)』 신문(1919년 4월 6일자)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에 실린 일제의 한국에서의   폭정 기사(1920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