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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4년 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안창호(安昌浩)와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상해에 도 착한 동농은 안창호의 안내로 박은식 · 이시영 · 이동 녕 · 김구 등과 만나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 었다. 그리고, 동농은 대동단 상해본부를 설치하고, 총재로서의 포고문을 배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큰 발자취를 떼어 놓았다. 한편, 만주(滿洲) 등지에 대 동단 지회를 설치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해나갔다. 수당의 삶은 고난의 연속 우리나라 속담에 “기다리는 시간이 긴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수당이 상해에 닿은 것은 1월 중순이었다. 그녀를 맞이한 시아버님은 어린아이처럼 며느리를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만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 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 “제가 아버님을 모셔야지요.” - “그래, 참 잘 왔다. 반 갑다.” 짧은 몇 마디 인사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이제부터 수당에게 낯선 상해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 다. 수당이 해야 하는 일의 시작은 시아버 님 을 만나려고 오는 독립운동가들을 뵙고, 인 사를 올리는 일이었다. 박은식 · 이시영 · 이동 녕 · 안창호 · 김구 등이 그들이었다. 한 분 한 분 얼굴을 익히고, 정성스럽게 모시는 일이 었다. 그리고, 상해의 여러 사정을 몸에 익히 는 일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긴장되는 하 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수당이 상해에 와서 보고 느낀 것 중에 참으로 딱한 것이 독립운동가들의 곤 궁한 생활이었다. 거처하는 집도 집이려니 와 세 끼 식사가 말이 아니었다. 아침식사는 흰죽으 로, 점심과 저녁은 기름에 지진 콩나물과 당면이 전 부였다. ‘독립운동도 세 끼 밥을 먹고 나서야 할 수 있을 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때, 수당의 담력이 발동했다. 가난한 임시정부 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들 었다. 용기를 내어 임시정부 법무총장 신규식(申奎 植)을 찾아가 “제가 친정에 가서 돈을 좀 얻어올까 하 는 데요”라고 운을 땠다. 신규식은 큰오빠 정두화(鄭 斗和)의 친구였다. 1920년 3월 초, 수당은 상해를 출발, 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국내로 잠입했다. 첫 번째의 모금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20여 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시아버님과 신규식이 지목해준 사람들을 만나 조심스럽게 자금지원을 부 탁했다. 임무를 마친 수당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조 이면서 신의주에서 세창양복점 이세창(李世昌)의 도 움을 받아 쪽배를 얻어 타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 정정화의 회고록 『장강일기』 (학민사, 1998) 『녹두꽃』(미 완, 1987)을 개정한 것이다. 수당 정정화(1900~1991,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