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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2,239달러(6.6%)이다. 호놀룰루의 한인 전쟁포로 태평양전쟁기 ‘지상의 낙원’ 하와이에는 2,700명 의 한인 청년들이 미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길게는 2년 짧게는 6개월 정도 생활하다가 귀국했다. 이들 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 을 당해 주로 태평양지역에서 미군이나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하와이의 포로수용소에 왔다. 한인 청 년들은 대부분 일본군과 함께 생활을 하던 군속(노 무자)·군인들로, 이른바 ‘남양군도’에서 일본군이 전 멸할 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일제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동 남아와 태평양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병력과 노동력의 부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쟁지역이 확대되면서 일본인만으로 채울 수 없었고, 한국인을 군속(노무자)과 군인으로 강제로 동원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선에 끌려온 한 인 청년들은 군속·군인으로 일본군을 위해 비행 장· 도로·항만 등을 건설하기도 하고, 또는 일본군과 함 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태평양지역에서 미군 이 대일전에 승리하면서 전쟁포로가 되거나 미군에 투항하여, 하와이의 포로수용소로 오게 되었던 것 이다. 태평양지역에서 미군의 전쟁포로가 된 한인들은 초기에는 일본인으로 간주되어 하와이에서 임시 수 용되었다가 미국 본토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한인 은 미군의 적대적인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 면서, 대부분의 한인포로들은 미군의 보호하에 하 와이의 포로수용소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다가 해 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와이에서 한인 전쟁포로들은 호놀룰루공항 근처에 위치한 샌드 아일랜드(Sand Island) 포로 수용소와 호놀룰루시 외곽에 있는 호노울리울리 (Honouliuli) 포로수용소 두 곳에서 생활했다. 하와 이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한인들은 미군과 하와이 교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 호노울리울리의 하와이포로수용소 자리 하와이 『자유한인보』를 편집한 박순동, 이종실, 박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