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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인 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조직 유카탄으로 온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이 강제노역을 당하던 4년간의 노동계약이 끝나기 3일 전인 1909년 5월 9일 국민회 메리다지방회라는 한인단체를 조직하였다. 미국의 국민회에서는 황사 용과 방화중 두 명을 메리다에 파견하였다. 메리다지 방회 창립 광경을 『신한민보』 1909년 5월 12일자에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속박을 당하던 천여명 동포가 우리의 조국을 건 질 목적으로 국민회를 조직하였으니 어찌 묵국 (墨國) 일월(日月)이 놀라지 아니하며 (중략) 대한 국(大韓國) 태극기(太極旗)와 멕시코의 응사기(鷹 蛇旗)는 반공에 비겨 걸려 바람에 표표히 붙이는 기화요초(琪花瑤草)는 회소(會所)를 찬란히 단장 하였다. 멕시코에서 한국독립운동이 이날부터 시작되었 다. 멕시코 한인들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대한 인국민회와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들의 노력을 다받 쳤다. 멕시코의 대한인국민회에서는 한인들에게 한 사람당 1페소의 의무금을 거두었다. 1919년 3·1운동 기간에는 메리다지방회 소속의 한인들이 1919년 12 월 1일까지 중앙총회에 보낸 돈은 ‘21례’와 인구세 등 을 합쳐 약 1천 달러를 중앙총회에 보내었다. 메리다의 국민회관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의 중심지는 메리다이 다. 에네켄 농장은 유카탄 반도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한인들은 메리다 국민회관에서 모임을 가 졌다. 메리다지방회 결성 이후 한인들이 모일 수 있 는 회관이 필요하였다. 그렇지만 회관을 마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었다. 메리다에서 최초의 국민회관 은 김제선의 집에 두었다. 김제선은 멕시코에 온 이 후 바로 계약노동에서 풀려나 메리다 시내에서 자영 업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1908년 7월부터 메리다 시내에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마련하였다. 김제선의 집은 한인의 모임장소로 매주 70~80명 한인들이 농 장에서 모여 서로 고생하는 이야기도 하며, 교인들은 예배도 하였다. 1900년대 초 에네켄농장의 모습. 한인들은 이주 초기 노예같은 생 활을 하면서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연합뉴스 제공). 메리다 최초의 국민회관(김제선의 집) 98 2023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