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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97 표 김승학 등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모여 의논한 결과 각 단체의 지도자를 방문하여 통합할 것 을 권고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대표들은 관전현 대아하(大雅河)에 있는 독립단의 부총재 백삼규와 유하현 삼원보에 있 는 대한독립단 도총재 박장호와 삼원보 북구에 있는 한족회의 간부 이탁과 김동삼 등을 차례로 방문 하고 각 독립단체의 통합을 제의하자, 모두 통합에 찬성하여 각각 총회를 소집하여 단체를 해산하였 다. 그리고 압록강 연안에다 통일기관을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광복군 사령 부를 설치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軍務部) 직할 군사기관인 광복군사령부는 1920년 겨울 일 본의 대규모 공격으로 기능이 거의 마비되었 다. 그리하여 광복군사령부 제2영장 오동진 (吳東振)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서 광복군 사령부를 광복군총영으로 개칭하고 총영장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평안북도 의주의 천마산 대(天摩山隊)를 광복군 천마별영으로, 벽동(碧 潼) 파저강(波瀦江 : 일명 동가강) 연안의 무장 단체를 벽파별영으로 조직하여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광복군 총영장 오동진, 군사부장 겸 참모부장 백남준(白南俊), 경리부장 이관린(李寬麟), 천마별영 장 최시흥(崔時興), 벽파별영장 김영화가 임명되었으며, 안주·신의주·선천 등지에서 조선총독부 기관을 폭파하였으며, 조선총독부 경찰과 앞잡이들을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 전개한 광복군총영의 국내진격작전의 업적은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 다. 미국 의원단의 방문에 맞춰 결사대장 김영철을 비롯하여 안경신, 장덕진, 박태열 등을 특파하여 선천, 안주, 신의주 관청 등을 폭파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격하여 일제 군 경과 교전을 78차에 걸쳐 전개했고, 56개소의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면사무소, 영림서 등 20개소의 행정기관을 파괴했고, 조선총독부 일본인 군경사살이 95명에 이르는 전과를 올렸다. 관전현 청산구 소아하 강변 이진룡 기념원 항일의병장 이진룡(李鎭龍)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일제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박 정빈·조맹선·한정만 등과 함께 애국청년들을 규합,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기섭(朴箕 광복군 총영 본부 유적 : 요녕성 단동시 관전현 안자구(安子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