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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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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탐방시에는 묘비 뒷면이 비어있어서 촬영도 하지않았었다. 이번 탐방을 준비하면서 묘비 뒷면이 백비로 되어있는 이유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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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목록의 앞자리에 있다. 1910년 국권 피탈로부터 해방 이후까지,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에 그의 발자취가 선연하다. 중국 공산당과의 연합 항일 전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까지 영향을 끼쳤으니, 그의 생애가 곧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멸사봉공의 헌신적 삶에도 불구하고, 남쪽에서는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북쪽에서는 민족주의에 경도됐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졌다. 해방 후 극심한 좌우의 이념 갈등에 환멸을 느껴 낙향한 뒤에도 정부의 요시찰 대상이 되어야 했다. 사회주의자라는 전력은 분단과 체제 대결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주홍 글씨였다. 분단과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은 독재 정권이 이어지면서 그의 이름은 잊힌 채 가뭇 없이 사라졌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거물 정치인이었던 그는 나머지 반평생을 고향에서 평범한 농사꾼이자 촌로로 살았다. 그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던 2005년에 이르러서다. 당시 정부는 독립 운동가의 서훈 기준을 1945년 해방 시점으로 못 박고, 단지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서훈에서 탈락시킨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재평가했다.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나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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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했고, 고향의 야트막한 언덕에 잠들어 있던 유해도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됐다. 만시지탄일지언정 존재조차 부정 당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다. 당시 좌익계 독립운동가의 수훈에 대해 여러 뒷말이 오갔지만, 적어도 그를 문제 삼는 이들은 드물었다. 건국훈장 독립장은 대한민국장과 대통령장에 이은 3등급 훈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원인 김마리아, 초대 국무령인 김상룡,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이회영, 효창공원에 모셔진 삼의사 중 한 분인 백정기 등과 같은 반열이다. 독립운동을 주도한 거물급 인사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인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출처 : OhmyNews 25.12.08 서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