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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⑬ 97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26일 또 바람이 불었다. 실아가 단구에 갔다가 돌아왔다. 집일이 또 성사되 지 않아 부득이 또 합니하에 마음을 두었다. 27일 눈이 날리다가 곧 개었다. 실아가 식구들을 데리러 대사탄에 갔다. 그것은 이 병삼 가족이 수레를 돌려 마침 그곳에 인도하였기 때 문이다. 손아(孫兒, 손자 창로)가 이날 오후에 돌아오 고, 가아는 이날 저녁에 돌아왔다. 단구는 전지와 토 지가 모두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영군이 합니하에서 회답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상룡(김대락의 매부)이 이르기를 “학교일 때문에 3일간 못 만났으니 격조했 던 터에 새해라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급하지만 공무를 먼저 해야 할 처지라 사사로이 틈을 낼 수가 없을 듯 하다”고 한다. 28일 맑음. 영근과 실아가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대사탄의 수 레는 오지 않고, 합니하의 집도 성사되지 않았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짐을 지고 선 처지라 시 일이 급한데, 동쪽은 무너지고 서쪽도 갈라지니 염 려를 이길 수 없다. 저녁에 만초(萬初, 이상룡의 다른 호)가 들어왔다. 기다리던 끝이라 하룻밤 대화를 나 누니 기운이 나고 위안이 된다. 29일 맑음. 둘째 며느리가 대사탄으로부터 왔다. 영근이 합니 하로부터 돌아왔는데 집에 야토(野土)가 딸려 살만한 곳이라 하므로 드디어 이주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형식이 손자 창로에게 편지를 보내고 바로 합니하로 갔는데, 내일은 반드시 마차를 내어 돌아올 것이다. 30일 손자 창로가 이른 아침에 단구로 떠났다. 그 숙부의 거취를 알아보고 그대로 합니하로 향하여 갔다. 그 아이가 평소에 건강하지 못한데, 무슨 수로 백리 길 고역을 감당하겠는가? 가엽고 안쓰럽다. 이 날 오후에 대사탄에 사는 목은상이 와서 보고, 기사 년(己巳年)의 옛일을 간략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