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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전개하다 97 한 가옥세를 갚게 하여 해결하였다. 이로 인해 묵경 지방회 총무 이순여와 서기 겸 재무 이인여가 사임 했으나 임원이 보충될 때가지 유보시켰고, 회장 김 동현이 사임하고 이건세가 새로 임명되었다. 1918 년 7월 9일 이순여가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떠나신 후 돈은 못받아도 평화로 잘 지내오니 아무 염려마옵소서. 우리 동포 사이에는 먼저 재정거래에 밝으면 평화는 자연되겠소이다”라고 하여, 이 문제 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멕시코시티의 한인 사업가 이순여는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많은 자산을 민족독립과 동포사회를 위 해 모두 제공하였다. 3 · 1운동 당시 독립의연금, 인 구세, 21례금, 독립공채 등의 각종 독립운동 자금 을 받쳤고, 그후에도 독립금 군사운동금 등의 막 대한 독립운동자금을 냈다. 1942년 2월 목테수마 (Moctezuma) 58번지에 묵경지방회 회관을 얻었 는데, 묵경지방회관에 필요 물품비 4,500페소를 이순여가 모두 담당했다.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의 활동 멕시코 한인들은 1909년 5월 9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된 이후 파란과 곡절을 겪었 다. 그렇지만 멕시코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를 중 심으로 단단하게 결속하여 민족의 독립과 동포들 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멕시코 한인들 의 역사는 대한인국민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대한인국민회의 조직은 멕시코 한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회단체였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1912년 10월경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지방회 설립을 청 원하여 묵경지방회가 설립되었다. 1910년 멕시 코 혁명이 일어나면서, 멕시코시티는 항상 변란이 끊 이지 않는 곳이었다. 묵경지방회가 설치된 후 혁명 의 중심지인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이산 할 수밖에 없었다. 1913년에는 통신이 불통되어 북 미의 중앙총회와 연락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 다가 1915년에 묵경지방회가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1919년 3 · 1운동 당시에는 이인여 · 이순여 형제가 독 립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멕시코시티에는 탐피코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 익주(Joaquin Kim)가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아마 도 사위 김순권의 권유로 이주하게 되었던 것 같다. 김익주는 탐피코에서 ‘부란사 콘디스’라는 2층 한옥 3 · 1운동 당시 멕시코시티의 이인여와 이순여가 백일규에게 보낸 편지(1919.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