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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수분하 대전자령 전투 대전자령 전투는 1933년 6월 30일 길림 성 왕청현 대전자령(태평령) 일대에서 지 청천(池靑天)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이 중 국의용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대전자 령을 지나가는 일본군 전투부대를 격파한 전투이다. 한 · 중 연합군은 4시간 동안의 격전 끝에 일본군 2백여 명을 사살하고, 군 복 3,000벌, 군수품 200여 마차, 대포 3문, 박격포 10문, 소총 1,500정, 담요 300장 등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한 1930년대 대일전 투 사상 최대의 승전으로 기록되었다. 한국독립군의 항일전쟁 사상 최대의 승 전도 대전자령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지금까지의 전투 대상이 주로 만주국군 이었음에 비하여 이 전투는 일본군을 상대 로 벌인 대규모 작전이었던 것이다. 동경성으로부터 철수하여 왕청현 동북의 산악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 · 중 연합군 은 1933년 6월 25일경 노송령을 넘어 천교 구에 이르렀다. 이때 연합군은 대전자 일명 나자구에 머물고 있던 한국주둔 일본군 제 19사단의 ‘간도파견군’ 철수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한 · 중 연합군은 3일간 100여km 를 강행군하여 6월 28일 경 대전자 북방 노 모저하(老母猪河)에 도착하였다. 대전자는 수분대전자(綏芬大甸子), 또는 나자구(羅子 溝)로 불리우던 곳으로 연변지방에서 연해 주로 들어가는 길목의 요충지였다. 지청천 사령관은 전투에 임하는 독립군을 격려하며 최 후의 승전을 촉구했다. “이번 전투는 이천만 대한(大韓) 인민을 위하여 원한의 복수를 하는 공격이다. 총탄 한 발 한 발이 우리 조상의 수 천, 수만의 영혼이 보우(保佑)하여 주는 피의 사자이니 제 군은 단군의 자손들로 굳세게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만대 자 손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도록 하라.” 한국독립군 왕청현 나자구 수분하 대전자령 전투 유적지 왕청현 나자구 노모저하 한국독립군 대전자령 전투 유적지 길림성 왕청현 태평령에는 독립군 전투의 기념비나 기록도 없고 소련홍군 전투 기념비만 높게 서 있다. 중국의 동북지 역 한국의 역사지우기의 현장 중에 하나이다. 한국독립군 활동지(왕청현성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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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군의 독립전쟁과 국내진공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