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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② 97 지 않은 곳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슬피 탄식하며 베 개를 쓰다듬자니 고로(孤露)의 감회(부모가 세상을 떠나 안 계신 것에 대한 슬픔)가 더욱 간절하다. 28일 흐림. 춥고 바람이 불었다. 형국(衡國=이상룡의 조카)과 이상룡이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사는 농장을 강남 같은 곳으로 만들 셈인지? 경팔(景八) 황형(黃兄 =황동영)과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농사를 지을 것이라 한다. 전지(田地)를 구하러 간다고 하니 비록 힘써 말 릴 수는 없으나, 여러 달 함께 거처하던 나머지라 서 운함이 매우 절실하다. 무료한 가운데 겨우 『이씨족 보후서(李氏族譜後敍)』를 지었다. 이는 이형이 여러 번 부탁하기를 마지않으면서 선대의 정의를 가지고 책임을 지우니 끝내 그 뜻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였 다. 그러나 내 글이 졸렬하고 글씨가 거칠어 휴지로 나 삼을 수 있으리라. 29일 맑음. 평해의 사돈집에서 메밀 한 되를 보내왔다. 오후에 수제비를 끓여 이형과 한 상에서 숟가락을 드니 위장 이 탁 트이고 땀방울이 등을 적셨다. 음식이 쇠약한 기력을 돋운다는 말이 진실로 빈 말이 아니니, 백거 이의 ‘떡국’이라는 시가 꼭 그대로이다. 매우 우습고 도 우습다. 오후 다섯 시에 손자 창로가 무사히 도착했는데 시 종꾼 한 사람을 더 데리고 왔다. 땔나무하고 물 기르 는 수고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니 매우 기쁘고 다행 한 일이다. 달경(達卿)의 끔찍한 소문은 참혹하다. 비 록 나이는 어리다 하나 온 문중의 성쇠가 달린 몸이 었는데, 불행히도 우리 집안의 운수가 다한 때에 태 어나 끝내 좋은 선비 하나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생 각할수록 너무나 아까워 마치 미칠 것만 같다. 그 외 에도 놀랍고 황당한 일이 한번이 아니라도 족한데, 위급해질 기미를 보고 먼저 떠나온 것은 그래도 요행 이라 할 것이다. 마침 매부(=이상룡) 사는 집이 또 청나라 사람에 게 구박을 받아,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한다. 나뭇 가지 하나면 족할 뱁새 둥지 같은 집조차 오히려 편 안히 구처할 수 없어 만리 이역에서 외로운 발걸음 이 가는 곳마다 군색하다. 안타까워 탄식한들 무엇하 랴?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