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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멕시코에는 8,245개의 아시엔다가 있었고, 유 카탄에는 수많은 에네켄 아시엔다가 있었다. 19세기 멕시코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에는 에네켄 의 수요가 폭주하였기 때문에,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어야만 했다. 에네켄 농장주들은 부족한 노 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19세기 말경 중국인들을 유카탄 반도에 대거 들여 왔으나, 중국인들이 혹사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당국에서 멕시코 이민을 금지하게 되었다. 당시 멕시코 이민을 대리하던 영국 국적의 마이어스(John G. Mayers)가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한국 인들을 모집하였다. 한국에서 멕시코 이민으로 모집된 1,033명은 1905년 4월 4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미지의 땅 멕시 코로 향하였다. 영국 국적의 샌 일포드(S. S. Ilford) 호를 타고 한달 정도 걸려 멕시코 서남부의 살리 나 크루스(Salina Cruz) 항구에 도착하였다. 한인들 은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하얀 도시’ 메리다에 도착 하였다. 메리다에서는 커다란 천막이 처진 노천 땅 바닥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5주일이나 계속 되었 다. 그리고 한인들은 32개의 에네켄 농장에 배치되 었다. 야스체(Yazche) 농장에 50~60명, 춘추쿠밀 (Chunchukumil) 농장에 70명, 첸체(Chenche) 농장 에 133명이 갔다. 멕시코에 온 한인들은 자유노동자가 아닌 계약노 동자였다. 4년간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일을 하여야만 했다. 한인 노동자들은 에네켄 잎사귀의 단 단한 밑둥을 베어낸 다음 가시를 제거하고, 잘려진 잎사귀들을 50개씩 묶어 한 다발을 만들었다. 농장 의 작업시간은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섭 씨 42~43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은 가장 적응하기 힘 든 기후였다. 작업 할당량은 하루에 50개 묶음짜리 30단의 에네켄을 자르는 중노동이었다. 폭염 아래서 뾰족한 가시가 양쪽에 붙어 있는 에네켄 잎을 잘라내 기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는 일도 많았다. 한인들이 이민갈 때 탔던 여객선 샌 일포드호 멕시코 이민 초기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노동자들의 모 습 (연합뉴스 제공)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 멕시코지역 한국독립운동의 중심지, 메리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