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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 도산의 아들,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안필립 97 에서 영화 촬영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홍 콩에서 한국을 방문하여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 도 만났다. 필립은 1962년 7월 14일 한미 친선 합작 영화 제작을 협의하기 위해 자기 프로덕션의 매니저 와 함께 국내에 들어왔다. 필립은 당시 한국의 신상 옥 감독과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하려고 하였지만, 다 음해에 한국정부가 외화를 규제하였기 때문에 이 작 업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필립은 1967년 5월 국내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 기 위해 귀국하여 2주일 가량 머물면서 아버지의 묘소 를 이장하기 위한 협의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도산 서거 30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1968년 3월에도 한국에 들어왔고, 1971년 3월에는 문화공보부 초청으 로 국내에 와서 20여 일간 국내 예술인들과 간담을 나 누고 국내 공업단지도 돌아보았다. 다음해인 1972년 4월에는 재미교포 1백 여명과 함께 고국을 방문했다. 필립의 어머니 이혜련은 1969년 4월 21일 86회 생일에, 잠깐 낮잠을 자겠다고 딸 수라에게 말하고 영원히 영면을 하였다. 어머니의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남편인 도산과 같이 모셔졌다. 이혜련의 유해 는 1973년 11월 7일 국내에 들어와 김포공항에 내려 졌고, 11월 9일 필립의 어머니 이혜련은 남편과 함께 도산공원에 합장되었다. 아버지 도산 영화 제작시도 안필립은 도산 안창호의 장남으로 아버지 도산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국내와 미국 · 중 국 · 러시아 · 멕시코 등을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하였 기 때문에, 그가 아버지와 같이 생활한 것은 겨우 10 년 정도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립의 일생은 아 버지 도산과는 떼어 놓을 수가 없다. 필립은 도산이 서거한 이후 국내에 도산공원을 건립하였으며, 마지 막으로 아버지를 기리는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하다 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안필립은 1978년 2월 28일 오후 4시 30분 로스앤 젤레스 세다스 사이나 병원(Cedars-Sinai Medical Center)에서 폐암으로 수술한 후 휴유증으로 7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도산기 념관을 국내에 설립하는 문제와 영화인 신영균과 함 께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는 영화 제작의 최종 마무 리를 짓기로 하였다. 필립은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 다. 결혼을 하면 그 여자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관 심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효심이 대 단했고, 평생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 안필립이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은 1978년 3월 6 일 오후 1시 30분 자유의 집(The Hall of Liberty)에 서 거행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에서는 하루 동 안 회의를 휴회하고 시장이 정식으로 애도의 뜻을 표 하였다. 1984년 11월 14일 12시 30분 필립은 할리우 드 명예거리(Walk of Fame)에 그 이름이 새겨졌다. 정부에서는 2021년 안필립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 훈을 기리기 위해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등을 역 임하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 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