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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정책·정령을 선전하는 기관지 반도청년보(半島靑 年報)를 발행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무기, 탄 약 구입, 독립단원 모집과 훈련, 상해 임시정부 지 원과 통신업무. 국내 진공작전 수행 및 친일밀정 제 거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11월 1일에 관전현 홍통구(弘通溝)에서 창 립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발기인은 곽상하(郭 尙夏)·김시점(金時漸)·김승만(金承萬)·김창수 (金昌洙)·박춘근(朴春根))·오능조(吳能祚)·오학 수(吳學洙·이영식(李英植)·송연주(宋連周)·장재 순(張載舜)·함석은(咸錫殷)·장자일(張子一)·차 경신(車敬信)·오동진(吳東振)·지중진(池仲振)· 백일진(白日鎭)·이애시(李愛施)였다. 1920년 1월 13일.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취지서가 김시점(金時 漸) 등 17명의 명의로 독립신문에 발표되었다. 광복군사령부과 총영의 유적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만주지역 서북간도를 중심으로 약 50여 개의 독립군단이 조직되었 다. 이들 독립군단의 소속 독립군들은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각 독립군단 들은 소규모 군사조직이었고, 군장비나 무기보급 등이 충분하지 못해 효과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 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와 같은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독립군단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1919년 12월경에 일어났다. 평북독판부·대한의용군사의 회·한족회·대한독립단 ·청년단 연합회 등 남만주 각 독립단체를 통 합하기 위하여 평북독판부의 대표 조병준과 김승만, 청년단연합회의 대표 안병찬과 김찬성, 독립단의 대 대한독립청년단 활동지 : 단동시 영안가 현재 모습 단동시 관전현 홍통구(紅通溝) 전경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창립회 의가 열렸던 장소 광복군사령부 유적, 요녕성 관전현 향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