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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이기 선생 생가(海鶴 李沂先生 生家)
이기(李沂) [1848~1909]는 근대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을사조약이 체결될 당시 귀국하여 1906년 장지연,윤효정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하여 사회계몽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1907년 3월에는 나인영(羅寅永) [羅喆] 등 10여 명의 동지와 협의하여 결사대인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7년의 유배형을 받기도 하였다. 고종의 특사로 석방된 후 상경하여 「호남학보 (湖南學報)」를 발간하여 독립을 위한 민중 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해학 이기 선생 생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으며, 원래 안채 1동과 사랑채 1동의 초가집이었으나, 2003년 12월 26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훼손된 안채를 정면 4칸, 측면 2칸의 초가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