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page
96page
최백근 당시나이 47세
동지의 삶과 죽음
수암 최백근 동지는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에 민족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4·19혁명시기에는 사회당과 민자통에서 일하며 민주주늬와 민족 통일을 위해 싸웠던 민족의 걸출한 지도자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하동보통학교, 광주고보, 와세다대학, 서울외국어전문학원을 다니며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강집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투쟁을 벌였다. 미군정 시기에는 여운형 선생이 창당한 근로인민당에 참여하고, 남북을 오가며 통 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동지는 긴건국전쟁 때에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952년 12월 간첩협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1955년 9월까지 복역하였 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사회활동을 재개하고, 신동지총연맹의 공천으로 7.29총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구 사회당창당준비위를 결 성하고, 최근우 선생을 준비위원장으로, 자신은 조직부장을 맡았다.
사회당은 창당준비선언문에서 "수탈과 억압이 종식되는 사회주의적 사회를 건설할 것을 궁극적인 이념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강령에서는 '중요산업의 국유화, 양심적 민족자본가까지 연대의 범위에 포함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1961년 2월에 민자통을 결성하고, '2·8한미경제협정반대 투쟁', '2대악법반대투쟁', '남북학생회담 성사투쟁' 등 '민족자주통일 노선'에 일치하는 투쟁들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박정희와 5.16쿠데타 세력은 수많은 혁신계 인사들을 구속하였으며, 동지는 5월 22일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12월 21일 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함께 사형을 당하게 된다. 4.19혁명시기 혁신계의 가장 큰 조직가였던 선생을 알아본 박정희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만행이었던 것이다. 사후 동지는 망우리 묘역에 안장되었다가, 지난 2018년 1월 11일 이곳 마석모란공원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