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page
96 2025년 1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와서 잤다. 24일 바람. 황서방은 그대로 머물고, 병우가 와서 잤다. 집 아 이가 기한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필시 집이 또 여의치 않아 짐을 메고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 르는 것과 같다. 한탄 한탄스럽다. 25일 바람 불고 추움. 꿈에 내가 싯구를 엮고 있을 때, 우연히 선고(先考, 돌아가신 부친)께서 보시게 되었는데, 시구 가운데 먼 저 선[先]자를 지적해 보이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자 는 맞지 않으니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또 아우와 함께 막 『논어』의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 다[顏 淵問仁]」을 강론하다가 주해(註解) ‘귀[歸]는 허여 함[惟與也]’의 뜻에 이르렀다. 나는 평상시에 매번 “천 하는 인에 돌아간다” 하였고, 학내(學乃=백하의 동생 김소락)는 “귀유여[歸惟與]의 여(與)는 마땅히 허여한 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아우와 책상을 나란히 하고 토론할 즈음에 항시 각 기 그 견해를 고수했는데, 지금 이 땅에서 명나라 유학 자의 주석서를 얻어보니 ‘귀(歸)는 허(許)와 같으니, 허 여한다는 뜻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의 시례(詩禮) 가르침과 어진 아우의 총명한 견해에 위 아래로 승복하면서 풍수지감(風樹之感)과 경뢰지창(瓊雷之悵)을 이어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느 낀 대로 절구 두 수를 읊었다. 이날 오후에 김달과 이문형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김영근이 합니하에서 와서 “2백원 하는 개간 안 된 땅 이 있다”고 말했다. 힘을 헤아려 볼 때 부합이 되지만, 집 아이가 단구(丹溝)를 바라고 있으니 어떻게 취할 수 있겠는가. 김대락의 집에 자주 왕래하며 현안을 논의했던 매부 이상룡(국가보 훈부 제공)과 그가 남긴 기록 『석주유고(石洲遺稿)』의 일부(이상룡 기념사업회 제공). 그는 후일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