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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생각하는 역사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독도영유권』 서평 95 에서 ‘독도’ 를 분쟁지로 취급하거나 한국 영토지 도에서 독도 를 빼어버려 서는 그것이 세계적으로 객관적 진실 을 알 리 는 교과서나 지 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4. 제4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독도영유 권 관련 주요 자료」이다. 「1. 포츠담 선언(1945년 7 월 26일)」, 「2. 일본항복문서(1945년 9월 2일)」, 「3. 연합국최고사령관 지령 제677호」, 「4. 연합국의 구 (舊) 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1949년 12월 15 일)」. 「5. 러스크 서한(1951년 8월 9일)」, 「6. 덜레 스 평화조약준비위원장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문 유권석 해석 연설문(1951년 9월 5일)」, 「7. 샌프 란시스코 평화조약 전문(1951년 9월 8일)」, 「8. 요 시다 일본대표(일본정부 수상)의 평화조약 찬동 수 락 연설 보도문(1951년 9월 8일), 「9.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의 주일 미국대사에게 보낸 전보문(1953 년 12월 9일)」 등 아홉 개의 문서를 영어 원문 그대 로 실었다. 독도를 일본에 침탈되지 않게 하겠다는 책임의식 과 소명의식 1951년 9월 8일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 에 대한 연합국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정부 는 이 조약의 한 조항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 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 해석과 주장을 당연히 전면 부 인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자신의 자의적 해석과 일 방적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제기했다. 이로써 독도영유권 논쟁이 73년 넘게 계속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학문적 으로 가장 충실하게 투쟁한 한국의 대표적 학자가 바로 신용하 교수다. 구한말 애국지사의 인상을 연 상하게 하는 용모를 지닌 신 교수는 가장 최근에 출 판한 위의 책으로써 독도 연구와 수호에 대한 자신 의 필생의 학문적 열정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 기반 은 독도에 대한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영유권을 학 문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우리 조상이 넘겨준 영 토를 한 치라도 일본에 침탈되지 않게 하겠다는 한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의식 또는 소명의식이다.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출발한 신 교수의 독도 에 관한 일련의 수많은 저술은 “학문에는 국경이 없 으나 학자에는 국경, 곧 조국이 있다”라는 프랑스의 의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금언을 새 삼 떠올리게 한다. 1943년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트 주립대와 피츠버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학교 이사장,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사장·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 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필자 김학준 일본 마이니치신문사[每日新聞社], 『대일본 평화조약(對日本平和條約)』의 「일본영역도」,  1952(출처 『학술원통신』 제368호). 죽도(독 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