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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북가주의 한국독립운동 중심지, 새크라멘토 95 북미지방의 최대 한인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 는 1905년 4월에 결성되었고, 공립협회와 더불어 대 동교육회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공립협회 지방 회가 설립되었고, 한인들이 많은 새크라멘토에는 아 직까지 지방회가 없었다. 그러나, 한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1906년 7월 이학현을 공립협 회 경찰로 선정하여 한인들 간의 상호부조를 하게 하였다. 새크라멘토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았지만 정 작 살 집이 없어,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거 주하였다. 그러다가 1906년 7월 우경식이 새크라멘 토에 한인여관을 열면서 그곳에서 한인 노동자들이 숙식을 하게 되었다. 새크라멘토의 한인들은 1907년 10월 공립협회 경 찰소를 설립하고 10월 5일에 공립관을 세웠다. 그리 고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 본부에 지방회 설립을 요 청하였고, 회장에 김경함, 부회장에 신순만 등 임원 을 선출하였다. 한인감리교회미션도 세워 10월 13 일에 미국인 목사가 설교하고 양주삼이 통역을 하였 다. 1907년 7월 공립협회 새크라멘토지방회를 오스 트리트(O Street) 406호로 이전하였다. 새크라멘토 계곡의 한인 재력가들이 세운 한인비 행가양성소 새크라멘토 계곡을 중심으로 벼농사를 하기 위해 많은 한인들이 몰려들었다. 북가주(北加州)의 윌로 우스(Willows) 지역에서는 김종림이 3,000에이커의 대농장에서 벼농사를 경작하여 매년 15만 석의 수확 을 거두는 대농장주가 되었다. 당시 1석당 8달러 정 도이니, 매년 12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는 재력가였 다. 그래서 그는 ‘쌀의 대왕(Rice King)’이라는 별명 을 얻었다. 김종림 외에 이재수·신광희 등 재력가들의 적극적 인 재정 지원 하에 1920년 2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 근처의 글렌 카운티(Glenn County)에 비 공립협회 새크라멘토 연합관 자리(5번가 1500번지) 새크라멘토지방회 회장 김응규가 북미지방총회장  이대위에게 보고한 보고서(191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