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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전개하다 95 산을 모아, 1930년에는 총수입이 4만 페소에 달하 였고, 35,000페소 가량의 자본을 모았다. 1930년 이 순여의 재산은 14,000페소의 가옥을 소유하고 있으 며, 1만 페소 가격의 기계도 가지고 있었다. 또 자동 차 사업에도 투자하여, 10여 대의 자동차를 소유하 고 있었다. 이순여는 아버지 이성로, 형 이인여와 함께 멕시 코시티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 대한인 국민회 멕시코시티지방회가 설립된 이후, 1913년부 터 묵경지방회(墨京地方會)에 가입하였다. 아버지 이 성로와 두 아들들은 1915년부터 계속해서 묵경지방 회의 총무와 재무를 맡아서 민족과 동포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15년 회장 이성로, 이인여는 서기 겸 재무, 1916년 이인여 총무, 이순여 재무를 맡았 고, 1917년 서기 이인여, 1918년 총무 이순여, 서기 겸 재무 이인여, 1919년 이성로 회장, 이인여 총무, 이순여 법무원, 1920년 이성로 회장, 이인여 총무, 이순여 법무원 등을 맡았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이인여와 이순여는 북미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우리 민족의 사정을 게 재한 영문보나 미국신문 기사를 부쳐주면 스페인 어로 번역해 멕시코 신문에 게재하겠다 하였다. 이 순여는 「 3 · 1독립선언서」 를 「 Proclamacion De La Independencia De Corea 」 라고 번역하여, 한국민 이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을 멕시코에 알렸다.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도산 안창호 유카탄의 한인들은 자신들을 지도해 달라고 대한 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를 초빙하였다. 안창호는 1917년 10월 12일 여객선 산 호세호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17일 멕시코 마사틀란(Mazatlán)이라는 곳에 왔으며, 20 일에 만사니요(Manzanillo) 항구에 내렸다. 만사니 요항에서 다시 10월 26일 오후 6시 35분에 멕시코 시티에 당도한 도산은 묵경재류 한인들로부터 환영 을 받았다. 도산이 멕시코시티에 갔을 당시 한인은 모두 6명 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중앙총회장을 맞이하 기 위해 도착하기 사흘 전부터 기차역에 나가 기다 이순여 보석점 ‘라 코레아나’의 편지지 3 · 1독립선언서 스페인어 번역본(이순여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