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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한인사회 양대 지도자 석주 이상룡 선생, 규암 김약연 선생┃93 이상룡(李相龍) 선생은 1858년 경북 안동 법흥동 임청각 출생. 본관은 고성(固城). 본명 상희(象羲). 호는 석주(石洲).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상룡으로 개명 1895년 일제가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학문 수양을 멈추고 박경종(朴慶鍾)과 함께 가야산에 군사 진지를 구축하고 의병 항전에 나섰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군자금을 마련 하여 의병 투쟁을 전개했다. 이상룡 선생은 신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유인식, 김동삼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민족 자강 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8월, 마침내 나라를 빼앗기는 국치를 당하자 이상룡 선생 은 통분함을 이기지 못해 “매국 역적들의 목을 쳐라”는 상소를 올리고, 1911년 1월, 김대락, 유인식, 김동삼 등 안동 유림들과 함께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하여 1932년 5월 서간도 서란현 소과전자촌에서 순국할 때까지 서간도 한인사 회와 독립군 최고 지도자로서 항일독립투쟁을 이끌었다. 석주 이상룡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생가 (임청각, 경북 안동시)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유적 (중국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촌 대고산) 이상룡과 안동혁신유림이 압록강을 건넜던 유적지 (평안북도 신의주시) 서로군정서 독판 이상룡 선생 1911년 삼원보에 정착한 이상룡은 토착민과 이질감을 없애 고자 자신이 먼저 상투를 자르고 청나라 옷차림으로 고쳐 입 었고, 이름마저 중국식 상룡으로 바꿨다. 이회영, 김동삼, 이동 녕과 함께 유하현 삼원보에서 경학사 창설대회를 열고, 경학사 사장으로 추대된 이상룡 선생이 경학사취지서를 낭독하자, 동 포들은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경학사는 부설 신흥강습소를 설 립하고 이후 부민단, 한족회로 개편 발전하였고, 신흥강습소는 합니하에 신흥중학으로 확대개편 후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 였다. 1919년 4월, 만주의 한인 대표들이 모여 서로군정서를 조직 하고 독판에 이상룡, 부독판에 여준, 정무청장에 이탁, 군정청 청장에 양규열, 참모부 참모장에 김동삼, 독립군 사령관에 이 청천을 임명하였다. 1922년 8월 환인현 마권자에서 남만한족 통일회를 개최해 대한통의부를 수립하고, 그 산하에 의용군 을 조직하였고, 1924년 10월 정의부가 발족되자 독판에 선출 되었다. 오직 애국애족 정신으로 살다 남만주 무장투쟁 최고지도자 이상룡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