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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② 95 보(仁輔)가 그의 고장(故庄)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동 을 지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긴급한 소식을 대략 통 지하였다. 집 아이와 문극 및 경북 영양(英陽)의 조재 기, 충남 홍주의 임석호, 황해도 장연의 이명선이 걸 어서 유하현으로 출발하는데, 이병삼이 전별하는 뜻 을 보내왔다. 15일 맑음. 단단한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개울물 소리가 들린 다. 날씨가 전에 비해 따뜻해져 가는데, 그 뒤쪽 응달 의 추운 곳은 여전히 한겨울 날씨이다. 잇달아 배가 차고 설사 기미가 있으니, 물의 성질이 강하고 찬데 아직 익숙치 못했기 때문임을 알겠다. 지어놓은 삼부 환(蔘附丸)이 짐 보퉁이 속에 있지만 아직까지 도착 하지 않으니, 걱정이다. 16일 맑음. 거처하는 곳의 방구들이 차고 따뜻함이 맞지 않으 니 만초(萬初=이상룡)가 다시 따뜻한 곳을 찾아 거처 를 옮겼다. 여러 날 베개를 나란히 하여 같이 지내던 끝이라 안타깝고 허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 윤병규 가 사는 곳에서 와 보았다. 17일 눈. 오후에 바람이 불었다. 18일 맑음. 이병삼이 왔는데, 그의 아들 이장녕이 집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매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19일 맑고 추움. 20일 오늘은 쾌당의 삼칠일이다. 머리 모양이 점점 갖추어지고, 그 어미 또한 조금씩 회복되고 있 어 처음과 비교해볼 때 참으로 다행이고 다행이다. 선조들의 영령이 남몰래 도와주신 까닭이 아니겠는 가? 이것이 바로 이른바 ‘마침내 험악한 곳을 넘어감 이 일찍이 의외로 수월하다(=시경 소아 정월 편 내 용)’는 것인가 보다. 오전에 미역국을 끓이고 거친 조 밥을 지어 이웃 사람들을 불러오니 드디어 작은 잔치 가 되었다. 매우 우습고 우습다. 집안에 자손이 태어 난 경사가 과연 모두 이와 같은 것인가? 고향의 친지 들과 무릎을 부딪치며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것이 한 스러울 뿐이다. 21일 맑음. 쇠고기 3각 어치를 샀다. 이곳에서는 모든 물가가 비싸지만 우리 고향의 저자와 비교해 볼 때 이것만은 조금 헐하다. 22일 맑음. 유하현(柳河縣)으로 떠난 아이들이 그곳 40리 못 미친 곳에서 청인(淸人, 중국인)에게 막혀 일찍 돌아 왔다. 이는 이전에 일본인이 한국인과 몰래 꾀를 내 어 우물에 극약을 풀었다는 소문이 있어서이다. 어떤 사람은 흘러 나와도 먹지 않고, 어떤 이는 장막을 쳐 서 자물쇠로 채우고도 오히려 종적이 의심스러운 자 가 경내로 들어올까 우려한다.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번 금지령의 계제가 되었는가? 눈길에다 진흙탕 천지에서 8일 동안 헛수고를 하였으니 가련하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