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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군의 한중연합 전투┃91 1932년 11월 하순 2차 쌍성보(雙城堡)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독립군은, 그해 겨울 보급물자가 부족한 사태가 반 복되어 독립군 부대를 해산해야 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국 가 만주국이 수립되며 하얼빈 주위의 북 만주 지역이 점차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 의 세력권으로 활동에 큰 위협을 받게 되 고, 한인 동포사회와도 단절되는 등 항일 독립투쟁 조건이 매우 악화되었다. 지청천, 김창환, 오광선, 신숙 등 한국 독립군 지도부는 1932년 말 한국독립군 작전지역을 종전의 북만주 지역에서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만주 일대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 쌍성보 2차 탈환 전투 쌍성보를 점령한 연합군은 쌍성보의 지리 적 위치가 평야에 있어 적으로부터 방어가 쉽 지 않고, 수만 명 연합군 주둔지 확보에도 어 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쌍성보에서 남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우가둔으로 이동하였다. 쌍성보 수비대는 성내외에 분산 배치되어 적 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얼마 후 일 · 만 연합군 의 대부대가 쌍성보를 탈환하기 위하여 반격 해 왔는데, 중국군 수비대 내부에 반란이 있어 쌍성보는 다시 일·만군이 장악하였다. 1932년 11월 17일 오후 6시, 한국독립군과 고봉림 부대는 다시 쌍성보를 공격하였다. 한 국독립군은 주력부대의 일부분 병력으로서 정 면과 좌우 3방면에서 공격에 가담하였다. 개전초기에는 일본군과 만주군 연합대의 저항이 거셌으나, 선발 첩보·유격부대가 기습을 가하고 뒷산을 점령한 연합군의 산포대(山砲隊)가 성내에 집중포격을 감행하 자 일 · 만군은 맹공을 견디지 못하여 패주하였다. 쌍성보 2차 전투에서 일본군 1개 중대가 거의 전멸하였다 . 쌍성보 전투 유적지(동문(승욱문) 쌍성보 전투 유적지(쌍성보 북문 거리, 서문 시장 일대) ▶ 경박호 전투 1933년 11월 한국독립군이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만주국군 연합부대 를 흑룡강성 목단강의 경박호 일대에서 섬멸한 전투. 경박호 전투 유적지(흑룡강성 영안시 경박호 일대) 일본군 적진에서 한국독립군의 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