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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024년 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2) 1910년 3월 26일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1910년 3월 26일, 새날이 밝아왔다. 뤼순(旅順)형 무소 감방 창문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 리고 있었다. 안중근은 예삿날과 마찬가지로 몸가짐 을 가다듬고는 천주님께 기도를 드린 뒤 이생에서 마지막 아침밥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가 찾아와 머뭇거렸다. 안중근은 눈 치를 채고서는 물었다. “어제 부탁한 것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쓰지요.” “감사합니다.” 지바는 고개를 숙여 예를 드리고는 미리 준비한 지필묵을 꺼낸 뒤 벼루에 먹을 갈았다. 그 순간 안중 근의 머릿속에는 문득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란 여덟 자가 떠올랐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마음속으로 한 번 읊어보 았다. ‘그래, 나는 이것을 위해 오늘까지 살아왔던 거야.’ 안중근은 붓을 들고는 온 정성을 다해 힘차게 써내 려갔다.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그 순간 아주 통쾌했다.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았 다. 마치 농부가 추수를 다 끝낸 들판을 바라보는 흐 뭇한 심정이었다. 목동이 양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 가는 그런 평화로운 심경이었다. 안중근은 유묵에 화룡점정(畵龍點睛)코자 왼손에 먹을 묻힌 뒤 낙관을 찍었다. “신품(神品)입니다.” 지바가 감동한 채 말했다. “그동안 고마왔소.”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뒤 지바는 뤼순감옥 간수 직에서 퇴직했다. 그 는 고향 센다이(仙台)에 돌아간 뒤 철도원으로 근무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 그 의 집 한쪽에는 안중근의 반명함판 사진과 이 유묵 족자를 신주처럼 모셨다. 장엄한 낙조 안중근은 마지막 유묵을 쓰고는 곧 두 아우 정근, 공근을 면회했다. 담담한 말로 아우들에게 유언을 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 葬: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 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 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 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 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은 마지막 면회를 마치고 감방에 돌아온 뒤 어머니가 동생 편에 차입해준 흰 명주저고리와 검정 바지로 갈아입고, 그 위에 흰 두루마기를 걸친 다음 두 간수가 양팔을 잡고 인도하는 대로 교형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