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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93 로 1945년 8.15 광복까지 전장(1935년)·창사 (1937년)·광저우(1938년)·류저우(1938년)· 치장(1939년)·충칭(1940년) 등 중국 여러 도 시로 청사를 옮겼다.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충칭에서 임시정부는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는가 하면 1941 년 건국강령을 발표하고 1940년과 1944년 헌법을 개정하며 광복 한국의 기반을 닦았 다. 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6일 충칭에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임시정부의 마지막 본거지였던 충칭 임시 정부 청사는 외무부,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등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백 범 선생이 쓴 징심정려(澄心靜慮)라는 글씨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는 1991년 중국의 도시개발 계획으로 사라질 뻔 하였으나 국내 대기업과 정부의 힘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 항일 무장투쟁의 본거지, 서간도 이륭양행(怡隆洋行)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안동교통국 중국 요녕성 단동시 완보구 흥륭 가(興隆街)에 1919년 5월 아일랜드 계 영국인 조지 쇼( George Lewis Shaw)가 설립하였던 이륭양행은 무 역선박회사의 대리점을 운영하며 대 한민국임시정부 안동교통국을 비밀 리에 지원하였다. 또한 건물 2층에 대한독립청년단 비밀기지가 설치되 었던 곳으로 1920년대 서간도 일대 독립항쟁을 지원했던 역사적인 장소 이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외관 영국인 조지 쇼가 이륭양행을 설립하여 운영하던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 안동교통국, 대한독립청년단 비밀기지가 2층에 있었다. 현재는 철거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