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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拓(동척)으로 넘어가 뒤에는 더욱 熾烈(치열)한 鬪爭(투쟁)이 展開(전개)되었다. 束谷里農民抗爭(속곡리농민항쟁)과 羅州署襲擊事件(나주서습격사건)은 恰似(흡사) 民亂(민란)이었다. 이와같은 鬪爭過程(투쟁과정)에서 恒常(항상) 三面民(삼면민)이 合心(합심)하였으니 兩人(양인)에 對(대)한 怨恨(원한)이 사무친 半世紀(반세기)동안 피로 얼룩진 土地回收鬪爭(토지회수투쟁)은 解放(해방)과 더불어 幕(막)을 내리고 一般土地(일반토지)와 같이 分配(분배)되었다. 여기 金永逵(김영규) 全聖暢(전성창) 兩人(양인)의 犯罪行蹟(범죄행적)을 列擧(열거)하고 犧牲(희생)당한 宮三面抗日農民(궁삼면항일농민) 英靈(영령)들께 念念不忘(염념불망) 慰勞(위로)의 黙念(묵념)을 올리면서 慨然不已(개연불이)하나이다. 一九九三年(일구구삼년) 二月(이월) 日(일) 羅州宮三面(나주궁삼면) 抗일農民運動(항일농민운동) 紀念事業會(기념사업회) 常任顧問(상임고문) 羅順祚(나순조) 識(식)이 碑(비)를 榮山浦公園(영산포공원) 入口(입구) 路邊(노변)에 있던것을 여기에 옮겨 세우고 說明(설명)을 加(가)한다